내 아이는 내가 가르쳐요

홈스쿨기사



내 아이는 내가 가르쳐요

박진하 0 1,823 2004.07.02 00:44
"내 아이는 내가 가르쳐요"
[중앙일보] 2003년 05월 08일 (목) 21:12

7일 오전 미국 워싱턴 남쪽 버지니아주 메이슨넥 지역에 있는 한 고급 주택의 앞마당 잔디밭.

이 집 안주인인 킴 톰슨이 드라이버로 진공청소기의 모터를 분해 중이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소년 5명이 주위에서 이를 지켜본다. "여기 보이는 구리선 다발이 코일이다. 여기에 전기를 보내면 가운데 있는 이 시커먼 자석축이 돌게 된다. 그러면 전기 없이 우리 손으로 이 자석축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다들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의 아들인 카메론(14)이 "정반대니까 아마도 코일에 전기가 생기겠지"라고 답한다. 그녀는 "바로 그거야"라며 거실로 자리를 옮겨, 수력.풍력 발전기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날 그녀의 집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른바 '홈스쿨'학생들이다. 평소에는 자기 부모(주로 어머니)에게서 영어.수학 등 기본적인 과목을 배우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녀의 집에 모여 5시간 동안 과학과 작문 등을 배운다.


"내 아들은 대화 방식으로는 공부를 잘하는데, 칠판에 쓰인 글씨를 공책에 옮겨적는 데는 특히 문제가 많았다. 학교생활까지 안될 정도였다. 고민 끝에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내가 직접 가르치기로 맘 먹었는데, 결정하던 날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라는 두려움과 책임감으로 잠을 못 잤을 정도다."


듀크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였던 그녀는 그날로 회사를 그만뒀다. 물론 안정된 수입이 있었던 남편 덕에 가능했다. 홈스쿨 관련 책자.커리큘럼 및 관련 웹사이트도 많았고 같은 처지의 부모들끼리 정보교환이나 그룹지도를 할 수 있는 모임도 있어 생각보다 출발이 어렵지는 않았다. 현재는 자신도 아들도 만족하는 상태.


미국 홈스쿨의 역사는 1970년대에 종교적 이유로 시작됐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공립학교의 진보적 교사들이 진화론까지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신앙심을 해친다"며 반발한 것.


하지만 이때는 대부분 주(州)에서 홈스쿨을 합법화하기 이전이라 많은 부모들이 '부엌에 커튼을 쳐놓고 가르치는'상황이었다. 이후 미국 학교 내에서 잇따르는 총기사고.폭력.마약.섹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면서 일반 학부모들까지 종교 차원을 떠나 일반 학교 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홈스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어 부모들로 구성된 홈스쿨법적보호협회(HSLDA)의 치열한 법적 투쟁과 의회 로비활동이 이어진 끝에 현재는 대부분의 주정부가 홈스쿨을 위한 지원제도를 갖고 있다. 버지니아주는 부모가 대졸 이상이면 홈스쿨 교사로 인정(고졸 이상이면 간단한 이수과정 거쳐야 함)하고 일년에 한번씩 자녀를 가르친 커리큘럼과 학습자료 목록을 교육위원회에 제출함과 동시에 학력평가 테스트를 받으면 학교를 다닌 것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대학이 입학사정시 홈스쿨 학생들에게 별도의 추가 시험을 요구하거나, 장학금.융자금에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연방 법률도 지난해 통과됐다. 오히려 미국 내 주요 명문대학들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대학 공부의 특성상, 홈스쿨 학생들이 더 좋은 성적을 낸다"며 지난해부터 '홈스쿨 컨벤션'에 참석해 유치활동을 벌이고 관련 잡지에도 광고를 내고 있을 정도다. 현재 미국 내 홈스쿨 학생은 최소한 1백만명을 훨씬 넘어선 상태.


버지니아 페어팩스 지역 홈스쿨 부모들의 모임인 셰어넷(SHARENET)을 이끌고 있는 멜리사 리머는 "나는 아이 네 명을 모두 가르치느라 직장(의사)도 그만뒀고 여기에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라틴어 선생 집으로, 음악학원으로, 축구클럽으로 정신없이 다녀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학교 교육이 모두 문제있는 것도 아니고, 홈스쿨이 공교육 제도를 뒤흔든다는 비판도 있지만, 최소한 어떤 아이들에게는 공교육이 안 맞는 것이 사실이기에 홈스쿨을 할 자유와 권리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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