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일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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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일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박진하 0 1,757 2004.07.01 23:58

벌써 한 여름이 다 된 듯 합니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저희 아이 초롱이는 어느새 얼굴이 땀띠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땐 울긋불긋해진 얼굴로 '덥다'는 표현을 할 줄 몰라 어리둥절해 하던 초롱이, 올해는 제법 한숨까지 섞어 가며 '더워 죽겠다'며 하소연을 하는 보통 한국 아이가 되었네요. 하지만 한국에서 맞는 초롱이의 두 번째 여름은 아마도 보통 한국아이들이 맞이하는 여름과는 좀 다를 듯 합니다.



모양자로 재단되는 아이의 창의성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라온 초롱이는 한국으로 들어오기 직전까지 독일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초롱이가 다니던 유치원은 'Eltern Initiative'라 하여 부모들이 유치원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교육 프로그램 또한 부모들의 논의에 의해 짜여지는 유치원이었습니다. '교육'이라고는 하나 이 유치원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 또한 부모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에 나가 뛰어 놀았으며 일주일에 한 번쯤은 인형극이나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각종 식물원과 동물원, 박물관을 견학하였고 가을엔 주변의 농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놀러 다니기만 하던 초롱이는 98년 11월, 저희 부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곧 집 주변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었던 탓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지만 초롱이는 예상외로 한국말도 빨리 배웠고 아이들과도 별 탈없이 어울렸습니다. 귀국 당시 아이의 입학을 일 년 정도 늦추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던 저희 부부는 빠르게 유치원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초롱이를 바라보며 초등학교 진학도 무리가 없겠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더구나 초등교육의 내용이나 방식이 예전과 달리 많이 변화하였다는 이야기들을 언론은 통해 종종 접했던 터라 어느 정도 제도교육에 대한 신뢰감도 있었습니다.


올해 3월, 초롱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입학 후 처음 며칠간은 주로 운동장에서 율동을 배웠는데 워낙 춤추기를 좋아했던 초롱이는 율동을 잘 따라한 덕에 교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엔 자신이 선생님처럼 구령대 위에 올라가서 율동을 했다며 자랑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초롱이는 유난히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숙제를 해야 했는데 교사는 아이들의 숙제를 평가하며 서로 다른 도장을 찍어 주는 모양이었습니다. 한번은 타원과 사선과 직선 등을 그려오는 것이 숙제였는데 초롱이는 책상 앞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앉아 있더군요. 제대로 해야만 '박사도장'을 받고 또 사탕도 받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별일 아니라고 이야기 해 봐야 소용없었습니다. 결국은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선생님이 화내면 어떡하지?'하는 아이를 보며 참 난감했습니다. 평소엔 벽에다 쭉쭉 줄도 잘 긋던 아이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한 듯 했습니다. 또한 입학 후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도 꼭 크레파스만을 고집했고 물감이나 다른 재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초롱이는 색깔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그림의 도구로 이용하던 아이였습니다. 만연필이건 커피건 바나나 껍질이건 봉숭아 잎이건 색깔이 나오는 것이라면 무엇을 가지고서도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던 아이가 불과 이 주일 만에 동그라미를 그려도 반드시 모양자를 대로 그렸고 모양자와 연필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별로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식마저 상실한 집단내 이기주의



그러던 중 하루는 아이와 함께 책가방을 챙기는데 연필이 하나 보이지 않더군요. 방안 어디엔가 있으려니 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가까이 지났을 무렵 없어졌던 연필이 다시 아이의 필통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어? 연필이 다시 나타났네?'하던 저에게 아이는 그제서야 연필이 사라졌던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일주일 전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필통을 안 가져 왔기에 연필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연필을 돌려 달라고 했더니 그 아이는 '싫어, 이거 내가 가질 꺼야! 이제 내 꺼야.'하더랍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초롱이의 연필은 그 아이의 필통에 들어 있었는데 그 날은 그 애의 필통이 바닥에 쏟아지며 초롱이의 연필이 굴러 나왔고, 초롱이는 또르르 굴러가는 제 연필을 주워 왔다며 좋아하더군요.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이번엔 아이의 겉옷 안감이 온통 헤져서 올이 풀려있고 발자국 마저 찍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그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실내화 신은 발로 옷을 밟아 뭉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엔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아이가 난데없이 가방에 사탕을 넣어달라고 조르는 것입니다. 왜 학교에 사탕을 가져가냐고 물었더니 같은 반 친구가 자기에게 사탕을 가져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안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던 터에 저희 부부는 '그 애한테 사 먹으라고 해' 라고 말했지만 초롱이는 '아냐, 걔가 나보고 사탕 사오라고 했단 말야' 라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나중에 담임교사에게 이 모든 문제를 물었더니, 담임교사는 "초롱이가 독일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너무 철저한 것이 문제"라고 하더군요. 저희 부부는 평소 초롱이에게 '공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왔고,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소유욕을 가능한 어린 시절에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다행이 초롱이는 나누는 것에 익숙한 아이로 자라주었습니다만 그것은 자기의 것을 나누는 것에 익숙한 것이었지 남의 것을 강제로 나누어서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런 문제들은 초롱이에게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당혹스런 사건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한국에선 아이들이 흔히 남의 물건을 가져가기도 한다며 오히려 남의 물건을 뒤져서라도 빼앗긴 물건을 되찾아오지 못하는 초롱이를 납득하지 못하더군요. 교사는 아이들이 옆에 앉은 아이의 교과서를 잘못 챙겨 가기도 한다는 예까지 들어 보였습니다. 그것이 초롱이의 경험과 무슨 상관이 있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착각하여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과 남의 물건을 의도적으로 빼앗는 것이 어떻게 비슷하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납득할 수가 없더군요.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통솔하기 위해 창의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공동체의식을 심어 주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저희 부부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하였습니다.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한다며 서양의 교육방식을 평가절하 하던 한국은 이제 창의력은 고사하고 공동체의식마저 상실된 교육의 현장으로 어린아이들을 내 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격적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 우리 아이들



그리곤 초롱이가 입학한지 한 달 반이 될 무렵, 저희부부는 더 이상 학교가 아이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롱이가 방을 유난히 어질러 놓았기에 아이에게 '방좀 치워라'했더니 난데없이 '선생님이 엄마한테 학교 와서 청소 좀 하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청소를 하는데 모르고 있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아이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더군요. 그 날 아침 아이가 물을 마시다가 바닥에 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담임교사가 화를 내며 '너 이거 당장 닦아! 니네 엄마 오라고 해서 당장 닦으라고 해! 아니야, 너 책가방 싸 가지고 집에가! 어서! 야, 어서 집에 가라니까!'하며 소리를 지르더란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초롱이 말을 전부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아직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 만큼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이고 고민하던 끝에 저희는 아이에게 학교에 가고 싶냐고 물었고 아이는 안가겠다고 대답하더군요. 어린아이가 뭘 안다고 아이에게 그런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희들은 아이가 어휘력이 딸릴 뿐 세상 속에서 어른들이 느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롱이는 유치원에 다니며 선생님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고 때로는 손바닥을 맞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교육기관에서건 체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도 저희는 초롱이에게 물었습니다. '초롱아 유치원 가고 싶어? 매도 맞았는데?' 그 때 초롱이는 계속 다니겠다고 말하더군요. 안가면 친구들도 보고싶고 선생님도 보고 싶을 거라면서 말입니다. 그 때도 저희들은 초롱이의 의견에 따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저희는 가능한 초롱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이 엄마는 교사와의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기 위해 '일 년 이내에 시집과 친정이 있는 곳으로 이민을 갈 계획'이라며 정중히 자퇴의사를 밝히고 왔습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어느 한 곳에 발붙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저희로서는 초롱이가 학교를 그만 둔 이상 굳이 가족도 없는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특별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초롱이의 사물함에 있던 들어 있던 물건들과 교실에 붙어 있던 초롱이의 사진을 챙겨온 제 아내는 그후로 며칠을 앓아 누웠습니다. 또 다시 국제 이주를 생각해야 하는 부담감도 컸겠지만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아이가 겪었을 정신적인 피로를 아이 엄마가 한꺼번에 뒤집어 쓴 탓도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가제적원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교사의 연락을 받고 학교에 찾아가니 담임교사는 어이없게도 아이 엄마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더군요. 아이 엄마가 통 교사들에게 인사를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학년에도 열 댓 명이나 되는 교사들의 얼굴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일일이 인사를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교사들은 수많은 학부모 중에서 제 아내의 얼굴을 굳이 기억하고 있다면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인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적이 아닌 자퇴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초등학교에는 자퇴원서라는 것이 없다고 하더군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자퇴나 제적 자체가 없지만 이민을 가는 경우는 '가제적원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생각해 보겠다며 '가제적원서'라는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제적'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려 아직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아이는 요즘 즐겁습니다. 월요일에는 주로 피아노를 치거나 타악기들을 두드리며 '난타'를 연상케 하는 공연을 벌입니다. 화요일에는 인형과 물병을 들고 나들이를 가는데 매주 화요일마다 오는 오뎅 포장마차로 달려가 군것질을 하는 날이지요. 수요일은 그림 그리는 날, 이 날은 주로 뭘 만들거나 그리는데 염료로 천을 염색해서 손수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목요일에는 놀이터에 나가서 놀기로 했는데 거의 매일 나가 놀다보니 목요일만의 프로그램은 사라져 버렸네요. 금요일은 '나무를 보러 나가는 날'이라고 초롱이가 이름을 붙였는데 뭘 하자는 것인지 몰라 그저 아이와 함께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나무 그늘을 산책합니다. 토요일에는 주로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나가거나 재미있는 비디오를 빌려 보곤 합니다. 그 외에도 초롱이는 틈틈이 이모들과 E-Mail을 교환하고, 엄마 아빠에게 편지도 쓰고, 엄마와 함께 콩나물도 다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인터넷 동화 사이트에 들어가 동화책도 보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의 스트레스가 완전히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는 한결 신경질도 줄었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한 달간의 실험이 아이에게 남긴 것은 몇몇 친구들의 이름들과, 모양자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가혹했을 수도 있었을 한 달간의 실험 아닌 실험을 되돌아보며 저희 부부는 더 이상 아이가 일관성 없는 교육제도와 근본이 부재한 교육철학의 실험도구로 전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격월간 '민들레' 10호에 실린 글이예여. 무지 더운날 정수와 성희가 땀에 젖은 돌맹이 부딪히면서 같이 썼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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