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 소년의 홈스쿨링 이야기

홈스쿨기사



깊은 산골 소년의 홈스쿨링 이야기

박진하 1 3,098 2006.10.12 20:01
깊은 산골 소년의 홈스쿨링 이야기
부모 선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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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사보레면 파전마을(가명)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삿짐 풀고, 짐 정리가 끝난 뒤,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서야 하람이를 위한 홈스쿨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기, 전화, 상하수도, 병원 및 약국은 물론이고, 화장실조차 없는 산골 깡촌으로 이사 들어온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염려했었다. 더군다나 아이가 다닐 학교가 없어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다들 우릴 무모하고 별난 부모처럼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우리의 사역에 있어 꼭 경험해야 할 일이 부족마을 생활이라고 판단했기에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두렵고 불안해서 처음엔 못하겠노라고 하나님 앞에서 떼도 썼었다. 그러다가 나중엔 오기 반, 포기 반의 심정으로 하나님이 몰아가시는 상황에 따르기로 했다.

그것도 믿음으로 여겨주신 걸까? 생각했던 것보다 순조로운 마을 정착이 이루어졌고, 억지 순종이나마 순종에 대한 상급으로 하나님께서 우릴 그 곳으로 부르셨다는 확신과 기쁨도 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선의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었다. 파전마을의 유일한 외국인학교인 파전한글학교도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전교생 1명, 교사 및 교감 1명(엄마), 교장은 아빠, 항상 오전 수업만 하고, 손님이 오시면 임시 휴교하는 학교, 교훈은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잠언 1:3)인 학교였다. 안식년 동안 1학년을 한국에서 마치고 온 하람이는 마을로 이사오기 전,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조금 확대된 형태의 홈스쿨링 시스템의 학교(전교생 14명 남짓, 정교사 1명, 부교사 1명과 불규칙적으로 있는 자원봉사자)에 9개월 다니는 동안에도 방과후에 2학년 한글과정 공부를 꾸준히 해왔었다. 마을에서 본격적으로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한국 교과과정에 더 비중을 두고 시간을 늘린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홈스쿨링을 계획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첫째는 목표설정이었고, 둘째는 아이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만큼 꼼꼼하고 철저하게 외우게 하고 시험도 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알고 넘어가는 식으로 할 것인가, 독창적인 방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교과과정 위주로 할 것인가, 한글과 영어의 비중을 얼마만큼 잡을 것인가 등등 목표를 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욕심을 내자면 독특하고 창의적인 홈스쿨링을 해보고 싶었지만, 사역과의 균형을 잡자니 도저히 그렇게 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하람이가 다음 안식년에 6학년으로 학교에 재적응할 때 전체 교과과정에 나오는 어휘와 개념들이 낯설지 않도록,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두기로 했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않으니 학생인 하람이도, 교사인 나도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첫 한달 동안은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왜 우리만 이런 곳에 와서 살아야 해요? 왜 나만 혼자서 공부해야 돼요?" 하는 하람이의 반복적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설명을 해 주어도 힘들어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마을생활에 금방 적응이 되고, 마을 아이들과 친구가 되면서부터 그 문제는 자연이 해결되었다.

한글 교육과정을 위해 필요한 교재는 대사관이나,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본국의 성경번역선교부(GBT) MK 담당 간사님의 도움으로 우송된 교과서와 "빨간펜" 학습지(구성이나 분량, 가격 등이 우리의 목표에 적합해서 선택)를 사용했고, 영어 교재는 하람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구입하거나 빌린 책들을 사용하였다. 빨간펜 교재는 해외발송이 안 되어서 구독신청 및 발송을 간사님이 대신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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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교과과정은 엄마인 내가 가르치고, 가끔씩 아빠가 한자나, 수학, 오후의 영어책 읽기를 도와주었다. 오전에 공부가 끝나고 나면, 하람이는 오후에 만화 그리기를 하거나 책읽기, 친구들 따라 시냇가에 송사리 잡으러 가기, 밭 매는 소 몰기, 땔감 구하러 가는 친구 도와주기 등으로 신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엄마, 심심해요. 이제 뭘 하고 놀죠?"라고 묻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람 아빠가 어렵사리 구해 온 농구 골대가 한 몫을 했다. 둘러보면 사방이 산뿐인 해발 2,000m에 위치한 우리 집 좁은 마당에서 네 남자들(두 현지인 형제가 우리와 함께 살았다)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시작한 농구는 내가 보기엔 오히려 스트레스 쌓기용이 아닌가 싶었다. 5분 놀다 공이 굴러 떨어지면 저 계곡 아래까지 20분 동안 공을 주우러 내려 갔다와야 했고, 운동 후엔 시원하게 몸 씻을 물도 귀한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들은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걸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때때로 하람이는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던 마을학교에 가서 그 나라 공용어로 저학년 아이들의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40여명의 전교생을 혼자 돌보고 있던 선생님은 그런 하람이를 무척 좋아했다. 마을의 고학년 아이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에 하람 아빠가 열던 토요 영어교실에서는 영어발음 시범조교도 하고, 아빠가 출타하셨을 때는 대신 선생이 되기도 하는 맹활약(?)을 하기도 했다.

하람이가 했던 홈스쿨링 시간표는 아래와 같다

요일 시간

1 교시

(9:00-9:50)

국어

국어

국어

국어

국어

도덕

2 교시

(10:00-10:50)

수학

수학

수학

수학

수학

실과/체육

3 교시

(11:00-11:50)

사회

자연

사회

자연

한자

음악

4 교시

(12:00-1:00)

문법

(Gram.)

음성학

(Phonics)

쓰기

(hand writing)

지리

(Geogr.)

수학

(Math.)

미술

교과서만으로는 이렇게 교과과정 위주의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단조롭고 지루했을 텐데, 학습지와 참고서, 교과서를 섞어놓은 듯한 교재 덕분에 하람이가 재미있게 공부를 한 것 같다. 가끔씩 나오는 부록들-미니 현미경, 자연 실험도구, 채집도구 등-도 아이의 흥미를 돋우어 주었고, 상담실 선생님과의 편지를 통한 교제와 특별 선물도 아이가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린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본국에서 부쳐주는 교재와 선생님들의 도움을 최대로 누리려고 애썼고, 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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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단조롭기만 한 시골생활에 새로운 맛을 더해주려고 나뭇가지들을 모아다가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야외 즉석 막대 빵 만들기도 하고, 매쉬맬로우(marshmallow) 굽기도 하고, 진흙을 직접 만들어 작품 만들기도 하는 등 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엄마와만 공부하는 것이 지겨웠을텐데도 아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였는지 순순히 잘 따라와 주었다. 오히려 교사인 내가 힘들어서 기도편지를 통해 후원자들에게 부지런히 우리의 홈스쿨링을 알리고 단기로라도 와서 도움을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한 일년 뒤부터는 방학 때마다 자원자들이 꾸준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분들에게는 주로 아이가 나와 함께 할 수 없었던 과학 실험이나 예능 실습, 신문 만들기 등의 특별 프로그램들을 해주시도록 부탁을 드렸다. 그런 자원봉사자들뿐만 아니라, 해마다 카트만두로 자원봉사 하러 오는 숭실대 팀의 특별 프로그램 도움도 받았다. 한 번은 하람이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그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마을에서부터 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길까지 13시간이나 걸어나간 적도 있었다. 건기에는 8시간이면 되지만, 우기에는 그만큼 시간이 더 걸려야만 차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참석하다보니, 다음 번에 온 숭실대 팀에서도 한동안 하람이의 이름이 전설(?)처럼 전해지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걸어보았다며 우리 마을까지 온 걸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여러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하람이도 참 즐겁고 신선한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집중적으로 부족언어 습득을 할 수 있었고, 아이 가르치는 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쉼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람 아빠도 오랜만에 한국말로 실컷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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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링을 하면서 이처럼 여러 분들의 도움과 봉사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또, 하람이는 공부에 대한 압박감 없이 여가시간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정서계발에 있어 좋았고, 부모인 우리로서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얘기도 많이 하고, 가까이에서 아이의 장단점 및 은사를 발견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학비가 많이 절약되어 좋았다. 사실 선교지의 생활비 중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교육비였다. 우리가 있던 곳은 전기가 없는 곳이라 태양열 집열판으로 발전하여 얻은 전기로 겨우겨우 쓰고 있었기에 8시쯤이면 가정예배 드리고 일찍 자는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보석처럼 크게 반짝거리는 별들을 함께 바라보며 별자리 찾기 하는 낭만도 가질 수 있었다. 오히려 카트만두나 한국에서의 생활에서 놓치고 사는 걸 거기서는 더 누릴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도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생활 덕분인지 하람이는 현재 한국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너무 잘 적응해서 반 아이들이 처음엔 하람이가 외국에서 살다왔다는 걸 믿지 않았었다. 학교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학기초엔 거의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는 걸 말려야할 정도였다. 혼자서만 공부하다 학교를 다니게되니 학교가 너무 좋아 방학하는 걸 겁낼 정도였으니까.

사실, 하람이가 고학년(5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홈스쿨링이 조금씩 어려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교과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남자아이의 특성상 엄마를 선생님으로 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웠고, 하람이 고유의 성격인 외향성, 사교성이 혼자만의 교실을 점점 더 힘들어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언어습득과 가사생활, 홈스쿨링을 병행하는 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힘겨워졌다. 우리와 같은 가정이 한 가정만 더 있어서 같이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누군가가 선교지의 특성상 한번쯤 홈스쿨링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가정이 있다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쉽지도 않지만 또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몇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아이의 학년과 성격을 고려하라. 저학년일수록, 내성적인 아이일수록 쉽다. 다만, 내성적인 아이의 사회성 계발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른 아이들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2. 만약 상황이 된다면 뜻이 맞는 서너 가정이 어울려서 홈스쿨링을 시도해보면 좋을 것이다. 교사가 소진(burn-out)되는 것도 막고, 아이들도 다양한 선생님들을 통해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 덜 지겹고, 사회성 계발도 되며, 선의의 경쟁과 협동을 통해 적절한 동기부여가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3. 후원교회나 개인들에게 홈스쿨링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울 영역을 구체적으로 알리라. 많은 선교사들이 그런 도움 요청을 부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 후원자들은 선교사역에 구체적으로 동참하고 싶어하고, 어떤 영역에서 어떤 일을 필요로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단기로 와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준비된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4. 적절한 목표 설정이 제일 중요하다. 부모가 먼저 마음을 비우고 아이를 위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홈스쿨링을 할 것인지를 우선 결정해야 한다. 목표가 정해져야 그에 맞는 교재도 선택할 수 있고, 수업의 강도도 정할 수 있으며, 일관된 자세를 가지고 안정감 있게 아이를 지도할 수 있다.
  5. 대가를 계산하라. 홈스쿨링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반드시 치러야할 대가가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홈스쿨링을 하면 학적이 남지 않아 한국에 와서 학교에 다시 들어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람이의 경우도 검정고시까지 각오를 했었는데, 다행히 학교장이 기초학력테스트를 통해 받아주어서 해결이 되었다. 사실 이 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하람이도 자신이 왜 여태껏 자신이 홈스쿨링을 통해서라도 한국 교과과정을 공부했어야 했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되어서 감사했다.
  6. 현재의 한국 교육제도로 볼 때 중등과정부터는 홈스쿨링을 생각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특별한 목표나 이유가 있다면 예외이겠지만. 또래 집단과 어울리길 더 좋아하고 부모에게서 서서히 독립하려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스쿨링을 강행할 경우 부모, 자녀간의 관계에 상처만 커질 수도 있다. 만일 중등과정에서 홈스쿨링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엔 장.단기 교사 선교사, 혹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지난 3년 간의 홈스쿨링은 쉽진 않았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 준,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와 채우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귀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영미 선교사(남아시아 X국, GBT)

Comments

서연맘 2014.05.2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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