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서 더 잘 자라는 아이도 있다

홈스쿨기사



학교 밖서 더 잘 자라는 아이도 있다

KCHA 0 2,286 2007.08.04 22:38

“학교 밖서 더 잘 자라는 아이도 있다”
홈스쿨링으로 자녀 키우는 교사 심은희씨

필요 느끼는 공부가 효과적 … ‘또래 사귐’ 부족은 아쉬워

서울의 한 고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는 심은희씨(44세)는 큰아들 종건이(17)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으로 이사했다.
서울에서 시골학교로 전학을 온 종건이는 곧 더 작은 분교로 옮겼다. 이후 종건이는 폐교직전의 학교로 다시 전학을 갔다.
이처럼 종건이가 네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닌 것은 ‘자연속의 작은 학교’여야 한다는 엄마의 소신 때문이다.

심씨는 “처음부터 아이에게 유별난 교육을 시키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며 “어린 시절에는 그저 잘 노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성장한 후에도 자산이 될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심씨는 또 “그래서 취학 전에 어떤 선행학습도 시키지 않고 신나게 놀게만 했다”며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도 종건이 혼자 학교에 보내는 등 학교 교육에 무심하고 무책임한 부모였다”고 말했다.
아이가 서울 아파트 단지 내 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 후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종건이 담임선생은 “아이가 학교에 흡수가 안 된다”며 “학습과정의 원리에도 관심 없고 준비·과제물도 무시하며 주의를 주면 ‘그게 뭐가 중요한데요’라고 되물어 온다”고 진심으로 걱정해줬다.
그 날 저녁 아들에게 “학교, 재밌니”라는 질문을 한 심씨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종건이는 “학교는 너무 이상해. 하고 싶은 건 모조리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것만 억지로 시켜”라며 “뭐든지 내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선생님 마음대로야”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종건이는 또 “미술시간에 그림 그리다가 선이 넘어갔다고 못하게 해. 넘어가면 어떤데?”라며 “또 종이 치면 무조건 스케치북을 덮게 하고, 화장실 가고 싶어 죽겠는데 쉬는 시간에만 보내줘”하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아이가 쏟아내는 수다를 들은 심씨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십 년간 내려온 학교 규율과 당연하고 명백했던 관념들을 뒤집어 보게 됐다.
종소리가 나면 다 끝내지 못한 그림을 그대로 두어야 하고, 자신의 의사가 교사에 의해 제어되며 생리적인 욕구조차 억제해야 했던 아이의 불만은 타당성이 있었다.
심씨는 고민 끝에 배움은 스스로의 필요와 관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그녀는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설정부터 다시 시작했다.

홈스쿨링 스스로 선택한 아들
학교생활이 신나지 않는 아이를 위해 심씨 부부가 택한 것은 아빠 휴무일에 맞춰 ‘주 1일 학교 안가기’였다.
종건이와 아빠는 등산, 시장구경, 연극·영화관람을 하거나 박물관, 유적지, 서점에 다녔다. 아빠가 아이와 놀아줄 수 없는 날에는 집에서 뒹굴며 놀게 했다. 그제야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강제적인 신문읽기 시간에 아이는 책을 읽겠다고 했고, 야외 단체 활동 대신 집에서 놀고 싶다고 했다.

“네 앞에 놓인 선택이니 네가 결정해라”는 엄마의 격려로 아이는 전교에서 혼자 신문 안 보고, 단체 활동도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 1년여를 통해 아이는 내가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학교 밖에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황당해 하고, 섭섭해 하시던 선생님들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심씨 부부는 내친김에 시골 행을 결심했다. 가능하면 깊은 산골, 아이가 자연의 품에서 맘껏 뛰놀 수 있는 곳을 찾다 양평에 자리 잡았다.

아이는 그곳에서 놀다 지쳐 심심해지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선지 무척 즐거워했다. 특별한 노력이 없었는데도 진도가 빨라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또래들보다 앞서 나갔다.
종건이는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틀을 만들었다. 어느 날 종건이가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심씨는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심씨는 “학교를 안 가겠다는 본인의 결정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였다”며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학습자 자신이 주체가 되었기에 속으로는 아주 기뻤지만 태연한 척 했다”고 말했다.
결국 종건이는 홈스쿨이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며 결과는 본인의 몫임을 스스로 알고 시작했다.

세상은 넓고 학교는 많다

홈스쿨링은 학교나 관습에 갇히지 않는, 노는 세계(학교)가 일반 학교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다. 스스로 공부로 규정하면 컴퓨터도, 만화나 영화도, 놀러가는 것도 다 공부가 된다. 점수화하지 않는 모든 것이 공부가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학교의 공부 개념과는 다르기에 무한 자유와 광대무변의 학교에서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홈스쿨에 대한 엄마 심씨의 생각이다.
종건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한다.
책이나 만화, 영화는 물론이고 무박산행만 20여 차례, 유적답사 10여회, 백두대간 도보 순례, NGO 활동, 다양한 캠프, 생태주의 음악 프로젝트 등 동아리 활동, 여행, 자원봉사 활동 등이 종건이의 학습방법이다. 또 스토리텔링, 연극 등 새로운 학습도 풍부하게 경험하고 있다.

청소년 국제교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에도 지원해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을 다녀왔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너무 바빠서 이런 연수를 모를 뿐 아니라 알더라도 응모할 수 없다.
종건이는 점수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공부를 한다. 이 덕분에 영어·일어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있다.

고입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그동안 체험했던 일과를 기록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재미와 요령도 터득해가고 있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 ‘학교탈출, 이제는 선택이다’는 제목의 책을 엄마와 공동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심씨는 “필요한 것을 즐겁게 배우는 정도로 시작한 일인데도 아이를 매개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기쁨으로 다가온다”며 “아이의 성장과 그것을 지켜보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온전한 일상, 배움의 즐거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며 “부부가 아이들과 의논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가족’간의 우애와 신뢰도 쌓여간다”고 말했다.

심씨 가족은 이런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지만 아쉬움도 있다. 종건이가 ‘또래 사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안교육 연대 캠프’나 ‘홈스쿨러 캠프’등을 통한 만남이나 ‘홈스쿨러 공동수업’을 통해 일정 부분 해소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 진학도 아이의 뜻
심씨 부부는 대학진학 문제도 아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겼다. 앞으로 대학에 가기위한 공부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갈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뜻이라는 것이 부모의 생각이다.

심씨는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해왔기에 대학진학도 자신이 결정할 것으로 믿는다”며 “홈스쿨러의 창의성, 사고력, 자기 주도력이야말로 사실은 대학이 요구하는 경쟁력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씨는 자신이 고등학교 교사이면서 자녀는 홈스쿨링을 하는 것이 제도권 교육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심씨는 “시대와 아이들은 변했다”며 “그러나 학교 교육방식은 그대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직에 있다 보니 학교라는 옷이 몸에 맞지 않는 아이들이 많음을 실감한다”며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고, 부모는 아이 편에 서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홈스쿨링은 아이의 머리가 뛰어나거나 부유한 가정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편견도 깨야 한다. 종건이는 초등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부모 역시 평범한 맞벌이 부부다.

심씨는 “종건이는 공부도 하지 않았으며 숙제도 하지 않고,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듣는 등 학교 다닐 때 오히려 처지는 부분이 많은 아이였다”며 “그러던 아이가 홈스쿨을 한 뒤 너무 재미있다며 공부에 푹 빠져 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들은 배우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하는데 학교에서 공부를 지겹고 괴로운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공부가 싫어진 것”이라며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배움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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