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 "공부가 즐겁고 행복해요"

박진하 2008-04-16 (수) 23:51 9년전 344  
http://www.imh.kr/b/B19-293

/ 사진제공=학교너머

올해 열세 살인 김초롱 양. 같은 나이의 아이들은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지만 초롱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 이른바 홈스쿨링(home schooling)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초롱이는 부모와 함께 1998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부모는 오랜 만에 다시 찾은 고국이 반가웠지만 초롱이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특히 또래 아이들이 함께 모여 일률적인 교육을 받는 학교란 곳은 더욱 힘겹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날 초롱이는 교실에서 실수로 물컵을 엎질렀다. 그런데 선생님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에게 “너희 엄마가 와서 닦아라고 해”라며 심하게 야단을 쳤다. 초롱이는 자기가 물을 쏟은 게 실수라고는 느꼈지만 그렇게까지 큰 잘못인지는 어린 마음에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집에 돌아온 초롱이는 울먹이면서 아빠, 엄마에게 이날 겪은 일을 털어놓고 “학교에 가기 싫다”며 속마음을 처음 꺼내보였다. 그러잖아도 아이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부모는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했던 초롱이가 미술 시간에 몇 차례 평가를 받더니 오히려 흥미를 잃게 된 것을 보며 한국의 학교가 아이에게는 맞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해오던 차였다. 마침내 어려운 결단을 내린 부모는 ‘교육관의 차이로 아이를 자퇴시킨다’는 사유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 반쯤 지났을 때였다.

이후 초롱이에게는 집이 학교가 됐다. 선생님은 아빠, 엄마였다. 놀고 싶을 때는 마음껏 뛰놀고 공부가 하고 싶으면 공부를 했다. 학교와 달리 시간표를 직접 짤 수도 있어 너무 좋았다. 그렇게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초롱이는 요즘 교육방송(EBS) 중학과정을 활용해 학과 공부를 하면서 악기 연주, 도자기 굽기 같은 취미 생활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자기 꿈이 뭔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관심도 기울여 본다. 학교와 학원에 치여 사는 친구들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여유로운 생활이다.

자율의 가치 스스로 깨우쳐

그렇다면 부모는 홈스쿨링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아버지 김정수 씨는 “글쎄, 학교를 다니는 또래 아이들보다 나은지 아닌지를 판단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유와 자율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줬다는 점이죠. 현재로선 아이가 인생 철학이나 세계관을 제대로 정립하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것만 이뤄지면 공부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니까요”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솔잎(18) 양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해 대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 학력은 검정고시를 치러 따냈다.

솔잎 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다니기를 아주 싫어했다. 자기는 동화책을 읽고 싶은데 학교에선 억지로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 등 짜여진 틀 안에서 공부하는 게 너무 힘겨웠다. 꾹 참고 학교를 다녔지만 결국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속마음을 부모에게 처음 털어놓았다. “엄마, 학교 꼭 다녀야 되는 거야? 안 다니면 어떻게 돼?”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어머니 이남수 씨는 이때부터 홈스쿨링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진학 전에 대안학교에 보낼 것을 고려하기도 했던 터라 홈스쿨링에 대한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실 도피가 아니냐”며 걱정했던 아버지도 솔잎 양이 내민 향후 학습계획표를 보고는 결국 승낙을 했다.

지긋지긋했던 학교를 벗어난 솔잎 양은 활기를 되찾았다. 꽉 짜여진 틀, 각종 시험과 성적에 따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니까 공부하는 재미도 다시 살아났다.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을 때는 하루종일 책이 닳도록 읽기도 하는 등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맞춰 학습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했다.

답답할 땐 기분전환으로 여행도 가고 간혹 외로움이 밀려오면 같은 처지의 홈스쿨러(home schooler)들과 어울려 ‘애환’을 나누기도 했다. 청소년 캠프나 해외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혔다.

/ 사진제공=학교너머

솔잎 양의 가족은 홈스쿨링을 하면서 뜻밖의 소득도 얻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의 가치를 새삼 재발견한 것이다. 어머니 이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아이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의 정도 더욱 도타워졌지요”라고 말했다.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에 대한 불신도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와 성적의 굴레에서 허덕이며 숨막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 대안교육을 찾아 나서는 움직임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아직은 소수 그룹의 시도에 불과하지만 홈스쿨링도 그런 대안교육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획일적 학교 교육방법 등이 탈학교 원인

홈스쿨링의 동기는 대부분 공교육이 획일적이고 억압적이어서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물론 수많은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모두가 문제 투성이는 아닐 것이다. 집단 생활을 통해 민주주의적 질서와 가치를 배우고 더불어 사는 사회성을 기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홈스쿨링을 선택한 부모들은 기존 학교 교육이 다양한 아이들의 개성과 적성, 소질을 개발해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부모가 스스로 자녀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학부모들은 대체로 높은 학력과 진보적 교육관을 가진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에서 홈스쿨링을 시도하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에서 인정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에 교육당국에서도 실태 파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게는 2,000에서 많게는 5,000여 가정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게다가 해마다 학교를 자퇴하는 초중고생이 수만 명에 이르는 사실을 감안하면 잠재적인 홈스쿨링 수요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실제 대안교육 관련 웹사이트에는 홈스쿨링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글이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

홈스쿨링의 등장에는 공교육 실패, 학부모의 고학력화가 계기로 작용했지만 교육 인프라의 발달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토대라는 지적이다. 특히 인터넷과 컴퓨터를 활용한 사이버 학습 환경이 충분하게 구축된 데다, 교육방송의 방송 강의, 교재 업체들이 내놓는 참고서 등 양질의 학습 재료들도 지천으로 깔렸다.

한 홈스쿨링 학부모는 “교재로는 교과서와 해설이 잘된 참고서를 활용하고 교육방송 강의도 많이 듣게 하는 편이다. 인터넷을 통해 홈스쿨링을 하는 다른 가정과 정보 교환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홈스쿨링을 하는 학부모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인연을 맺어 오프라인에서도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홈스쿨링 공동체에서 학부모들은 서로 간 노하우를 공유하고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한다.

자칫 외톨이가 되기 쉬운 아이들도 홈스쿨러 캠프 등에 자주 참여해 또래 친구, 선후배들을 사귀고 사회성을 배워 나간다.

충북 제천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는 지난해 ‘학교 너머’라는 홈스쿨링 네트워크를 구축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홈스쿨러들에게 체험 학습과 공동체 생활을 배울 수 있는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 역할이 홈스쿨링 성패 좌우

전문가들은 홈스쿨링의 성패 여부가 부모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조언한다. 아이가 혼자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일은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곡된 사교육의 연장에 불과하다.

일부 부모 중에는 이른바 명문대 진학을 위한 속성 교육이나 영재 교육의 수단으로 홈스쿨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홈스쿨링의 본질적 의미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일방적인 강요에 따른 홈스쿨링은 집을 학교보다 더 폐쇄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아이를 질식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병삼 교사가 부모에게 제안하는
홈스쿨링 수칙

▲ 부모와 자녀의 합의와 동의가 대전제다. 심사숙고한 다음에 결정하라.
▲ 처음 6개월 정도는 아이에게 '해방 기간'을 주라. 이때가 아이 스스로 자율성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다. 다만 인터넷 등 중독성이 강한 유혹 요인은 차단하라.
▲ 홈스쿨링을 주변에 떳떳하게 밝히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라.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의기소침해진다.
▲ 교장, 교감과 같은 감독자와 지시자 노릇을 하지 말라.
▲ 부모가 직접 스케줄 짜고 일방적으로 시켜서는 안 된다. 아이의 희망과 적성을 반영한 일과표를 짜라.
▲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라. 대화를 많이 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
▲ 학습과 공부의 모범을 보여라. 아이에게는 공부하라고 해놓고 부모는 TV나 보면 안 된다. 학교 보낼 때보다 더 모범적이어야 한다.

‘학교 너머’의 김병삼 교사는 “자녀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부모의 욕심에 따라 아이를 끌고 가려는 홈스쿨링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를 그렇게 옥죌 작정이라면 차라리 학교에 보내는 게 낫다”며 일부 뒤틀린 홈스쿨링 사례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사실 홈스쿨링은 전혀 새로운 교육 방식은 아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근대 학교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모두 홈스쿨링을 통해 자녀를 길러냈다. 그러다 현대에 이르러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한 학부모들에 의해 다시금 부활한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1980년대 이후 미국, 영국 등을 필두로 홈스쿨링을 정규 학력으로 인정해주는 나라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 숫자가 무려 2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다.

홈스쿨링을 거친 학생들이 정규 학교를 나온 학생들보다 학업 능력이나 자질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미국 정부는 홈스쿨링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반면 우리 사회는 아직 홈스쿨링의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홈스쿨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별난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고, 정부의 정책 역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다.

그러나 홈스쿨링이 자율성과 자립이라는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면 무작정 방치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김판수 아이비스터디 대표
"홈스쿨링 전문 튜터·교재개발 시급"

김판수 아이비스터디 대표이사(교육공학 박사)는 홈스쿨링의 전도사로 불릴 만하다.

홈스쿨링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던 1998년께부터 국내에 선구적으로 홈스쿨링 시스템을 보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비스터디는 민간 교육업체로서는 드물게 홈스쿨링 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제 홈스쿨링이 우리 사회에서도 새로운 교육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공교육 부실화, 사교육 비대화 등으로 인해 탈(脫) 학교 바람이 적잖이 부는 데다 컴퓨터, 인터넷 등 학습 매체의 발달로 '학교 밖 학습'의 인프라가 상당히 갖춰진 덕분이다.

그러나 홈스쿨링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특히 무엇보다 가정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어줄 '교사'와 '교재'를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홈스쿨링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사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전문성이 없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지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떤 교재를 선택하고, 어떤 방법으로 가르칠지도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홈스쿨링을 선택한 많은 부모들이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이런 이유가 가장 크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김 대표의 제안을 들어보자.

"탈 학교 바람이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라면 교육당국이 홈스쿨링 수요자들을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응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전문 튜터(가정교사)를 육성하고 적절한 홈스쿨링 교재를 개발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와 관련, 아이비스터디는 효과적인 홈스쿨링을 위한 '종합 처방전'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홈스쿨링 전문 튜터 교육과정을 거친 튜터와 학생 스스로 학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자 교과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성검사를 바탕으로 아이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교육 방법을 찾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홈스쿨링이 공교육과 완전히 배치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안학교와 마찬가지로 공교육의 '보완재'로서 충분한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획일적이고 평준화된 학교 교육에 아이를 선뜻 맡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의 특별한 아이에게 맞는 '맞춤 교육'을 학교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이 같은 학부모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홈스쿨링은 어느 정도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 대표는 '자기주도적 학습'(self-directed learning) 습관을 기를 수 있다는 점도 홈스쿨링의 장점으로 꼽는다. 학교나 학원, 과외 교사에게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받는 데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이 홈스쿨링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고 주체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은 아이들의 문제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력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자립 능력을 배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주도성을 길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 환경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 교육 관계자, 학부모, 학생 모두가 중지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아이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교육의 근본 목적은 피교육자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즉 자립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6/06/20 14:56
수정시간 : 2006/06/20 15:06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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