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이는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홈스쿨기사



지산이는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박진하 0 2,145 2008.04.16 23:58

최근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미래교육 비전과 전략 2030’ 확정안을 통해 무학년제 외에도 학교를 가지 않고 가정에서 학습을 하는 홈스쿨링을 2010년 시범운영을 거쳐 2015년부터 학력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조차 생소했던 ‘대안교육’이 이제 낯설지 않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교육 형태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지숙(여, 42살, 김포 장기동)씨도 7년 전 홈스쿨링을 선택한 부모 중 한 명이다. 처음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상한 엄마’라는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도 일류병 엄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지만 6년 동안의 홈스쿨링을 통해 이젠 여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홈스쿨링을 선택하게 됐나.
지산이는 감성적인 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과학탐구를 위해 올챙이를 가져갔다가 남은 올챙이들을 담임선생님이 하수구에 그냥 버리는 것을 본 이후로 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다양한 성향을 일일이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이 어린 지산이었지만 본인 스스로 홈스쿨링을 선택했고 우리 부부는 지산이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홈스쿨링을 결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존 학교교육은 거부를 했지만 어떤 교육 방법을 선택하느냐보다는 어떤 교육 환경과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지산이가 뭘 하든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배우면서 스스로 행복의 가치를 높일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랬다. 성적에 의해 잘하고 못함의 차이를 나타내는 학교교육으로는 그것을 채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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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를 간 것도 아니고 어떻게 교육을 했나.
학교를 다니는 것도 모험이고 다니지 않는 것도 모험이다. 처음엔 대안학교에도 가보고 여러 모임, 행사장에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좋은 프로그램도 많고, 도움도 됐다. 그런데 또 틀에 아이를 가둬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다니던 직장에 휴직계를 낸 상태여서 좀 느긋하게 내가 아이와 함께 직접 부딪쳐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산이는 집에서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또래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학교너머’ 캠프는 지산이에게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간디학교에서 홈스쿨러(홈스쿨링을 선택한 사람들)들을 위해 ‘학교너머’라는 캠프를 마련했는데 지산이는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 반을 참가했다. 서울의 강남 타워펠리스와 도시 변두리 가난한 동네를 직접 가서 봄으로써 같은 하늘 아래 사는 형편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자전거로 제주도를 반 바퀴 돌면서,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캠프를 하면서 지산이는 학교 밖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학교 밖에서는 원만한 사회성을 기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결국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학교를 가지 않아도,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관계를 맺고 또 그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사회성이라는 게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같이 공유하고, 관계를 잘 만들어나가는 거 아닌가? 지산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가지기는 어려웠지만 대신에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사귈 수 있었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면.
부부 중 한 사람은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야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 부담이 있을 수 있다. 더 어려운 문제는 과연 내가 아이와 함께 배울 수 있는 각오가 돼 있느냐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과정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도 끊임없는 자아 성찰을 요구한다. 자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주입시키겠다는 욕심 역시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6년을 되돌아보면 고통스러운 시간도 많았지만 정말 유익했다. 무엇보다도 일류병 엄마였던 내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다. 간섭을 최소화하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다.

지산이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데.
지산이가 올해 초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고 싶어했다. 외로웠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학교 안과 밖이라는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면 학교생활을 굳이 말릴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 학기동안 학교 선생님들과 마찰이 자주 생기면서 난 사실 지산이가 학교를 그만두길 바랬다. 지금은 그냥 지산이를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30-40대에 사회의 주역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3년이 좌우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길게 보고 싶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가까이에 고민을 나눌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산이를 학교로 다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김포에도 지역공동체가 생겼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갖게 되는 어려움과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문화행사나 그룹수업, 여행, 캠프 등 많은 것들을 함께 만들어 가다보면 아이들도 신이 나고 부모들에게도 많은 힘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구조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07년 10월 16일 권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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