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악동(惡童)이니까 악동(樂童)이다

홈스쿨기사



[경향의 눈]악동(惡童)이니까 악동(樂童)이다

네아이아빠 1 1,766 2013.04.08 14:55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겉으로 쿨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잖다. 북한의 위협 얘기다. 뿐이랴. 4월이 되자마자 가격 인상을 선포하는 곳은 왜 이리 많은지…. 회사 1층 커피 체인점도, 회사 건너편 생과일 주스 가게도 값을 올렸다. 1주일에 한 번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도 수고비 올려달라 하신다. 누구 말대로 안 오르는 건 월급뿐이다. 이웃 나라 총리는 재계에 임금 인상을 압박한다는데, 우리 대통령은 무슨 말씀 안 하시나.

한 가지 즐거움으로 버틴다. 일요일 오후 4시55분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2>에 채널 고정이다. 격주로 출근하는 일요일엔 귀가하자마자 ‘다시보기’를 누른다. 700원 쾌척이 아깝지 않다.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 때문이다. 무공해 목소리만으로도 넘치는 축복인데, 천재다. 정식으로 작곡을 배운 적도 없는 오빠 이찬혁군(17)은 오디션에 나오기 전 40여곡을 써놨다고 한다. 경연을 하면서도 계속 곡을 만들고 있다.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인가, 자작곡 가사는 기발하고 멜로디는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악동뮤지션이 드디어 결승에 올랐다(남매여 잊지 말라, 사설 쓰는 와중에도 문자투표 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탈락 위기도 겪었다. 자작곡을 부르면 대체로 점수가 후했고, 다른 사람 노래를 부르면 평가가 좋지 못했다. 캐나다 가수 타미아의 노래를 편곡한 ‘오피셜리 미싱 유’는 예외였지만. 기획사에서 ‘조련’하면 오히려 ‘망가졌다’. 기억나는 최악의 무대는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다. 동생 이수현양(14)이 ‘사랑은…’을 권한 심사위원 보아에게 “다방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할 때 알아봤다. 이번 무대는 틀렸구나. <K팝스타 2>를 통해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받은 보아지만, 이 경우는 아니었다. 결론은 방목(放牧)이다. 이 아이들은 그냥 놔두면 된다.

남매는 몽골에서 왔다. 홈스쿨링으로 공부해왔다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자녀를 먼 나라에 데리고 가 학교도 안 보내는 부모는 손가락질 받았을지 모른다. 이젠 아니다.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도 아들을 1년간 홈스쿨링으로 교육했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줄줄이 홈스쿨링을 선택하고 있다. 아이들이 몽골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 전에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학교가 이 아이들을 짓눌렀다면…, 이라는 물음은 지우기 어렵다. 심사위원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도 “획일화된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 자연을 배경으로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며 성장한 게 자신만의 느낌과 색깔을 갖게 해준 것 같다”(헤럴드경제)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중·고생 가운데 자유롭게 꿈을 꾸고 재능을 발산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보충수업과 ‘야자(야간 자율학습)’에 학원까지 다녀야 한다면 대단한 상상력을 갖고 있어도 이내 사그라들 게 분명하다.

대학교수인 지인 ㄱ씨는 안식년을 맞아 올여름부터 1년간 캐나다에 머물 예정이다. 초등학생 딸의 학교 문제로 고민이 많았는데 최근 결정을 내렸다. 친구 ㄴ씨 딸이 다니는 학교 이야기를 듣고서다. 이 학교는 학급 정원이 15명 정도 되는 사립학교다. 캐나다에서도 교육여건이 우수한 편이니 한국에서라면 ‘귀족학교’로 불릴 법하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귀족학교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어느 날 수학경시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ㄴ씨 딸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조용히 타일렀다. “공립학교 학생들은 몇 달씩 공들여 대회를 준비했을 텐데 (학력이 더 우수한) 사립학교 학생이 나중에 뛰어드는 건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일이야.”

한국의 귀족학교는 어떨까. 얼마 전 누군가를 기다리다 옆자리에서 하는 얘기를 듣게 됐다. “우리 애가 ○○국제중에 들어갔는데, 적응을 못해서 일반 중학교로 전학했지 뭐야. 워낙 우수한 애들이 많으니까 스트레스 받았나봐. 내가 그 학교 넣으려고 노력한 게 다 허사가 됐어. 들어가려면 전교 회장쯤은 스펙으로 갖춰야 한다고 해서 그걸 시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실제로 거기 가보니까 3분의 2는 회장 출신이더라. 고교 입시에 유리하니까 다들 오는 거야. 대원외고나 (자율형 사립고인) 하나고 같은 데 척척 붙거든. 아이가 국제중 포기한 뒤엔 엄마인 내가 실패자 같아서 한동안 두문불출했잖아.” 나는 엄마의 안타까움에 공감하기보다 전학 갈 용기를 낸 아이를 격려하고 싶어졌다.

전교 회장 출신이 즐비하다는 국제중 아이들 중에선 검찰총장이나 주미대사쯤은 나올 테고, 어쩌면 대통령이 배출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악동뮤지션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국·영·수 중심의 석차 경쟁 속에서 논리·연산·언어·분석 기능을 맡는 좌뇌는 발달할지 몰라도 감성·직관·맥락·큰 그림을 담당하는 우뇌는 쪼그라들 테니까. 몽골의 초원이 아닌 서울의 아파트숲에서 제2, 제3의 찬혁·수현이를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일까. 어쨌든 악동뮤지션의 선전을 기대하며!

Comments

johnny 2013.04.09 12:44
결국은 우승을 하였죠.
프로그램을 본적은 없지만 몽골의 선교사 자녀란것과 홈스쿨을 하였다는 기사가 눈에띄어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홈스쿨의 장점은 이루다 설명할수 없겠지만 여러가지로 제한된 학교와는 분명 다른 장점이 있음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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