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②] 사교육 현장에서 본 학벌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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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②] 사교육 현장에서 본 학벌 없는 사회

네아이아빠 0 1,848 2013.08.21 14:47
우리 아들이 최고의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학생의 어머니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전화기 너머 숨가쁘게 합격을 외쳐대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눈물마저 묻어나고 있었기에, 나는 이러다 어머니가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붙었어요, 붙었어! 다 선생님들 덕분이에요!!!"

듣는 나로서도 더 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명문대 합격생의 숫자는 그 어떤 광고보다도 파급 효과가 크다. 학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한 명이라도 명문대에 합격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축하드립니다! 그럼 저희 학원 게시판에 공고해도 되겠죠?"

학생의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전날과는 판이하게 다른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그녀는 학원 게시판에 자신의 아이 이름을 붙이지 말아달라는 것은 물론, 아예 자신의 아이가 우리 학원을 다녔다는 것을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일까.

"저기...우리 애가 입학사정관으로 합격했잖아요. 그런데 자기 소개서에는 사교육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혼자서만 공부했다고 썼거든요. 이미 발표까지 났으니까 별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서요."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이 작은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사교육'이라는 괴물 아닌 괴물에 대한 의식의 이중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히 사교육을 부정하는 이중적 의식이다. 그 이중적 의식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교육은 피하고 싶지만 경쟁 그 자체는 긍정하는 의식, 더 나아가 나의 아이는 입시 경쟁의 승리자가 되었으면 하는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사회가 부정해야할 1차적 대상은 사교육인가 학벌주의 사회인가?

우리 아이는 아무 것도 안 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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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을 앞두고 고3 수험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마도 대한민국 부모들의 최대의 로망이 이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아이는 아무 것도 안 시켰는데 알아서 잘 했어요." 혹은 "우리 아이는 교과서 위주로 학교 공부만 했는데 명문대에 갔어요."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구는 죽어라고 사교육을 시켰어도 명문대에 가지 못하는데, 머리 좋은 우리 아이는 사교육 없이 척하니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니! 집안 전체의 우월한 유전자마저 입증되는 최상의 엘리트주의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중적 의식에서 빚어지는 이율배반적 상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사교육을 잡자는 말에는 적극 동의하면서도, 실제 아이들의 '건강권'을 해치는 학교의 야간 반강제 자율학습에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 그 하나다. 심지어 특별반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상위권 아이들을 묶어내고 그 아이들에게만 특별 논술 수업을 시킨다든가, 주말이나 방학이나 공휴일이나 가리지 않고 '자율학습'을 하러 나오게 하는 것을 공교육의 일환으로 보는 것 등이 그것이다.

간혹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교육 전면 금지조치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사교육을 전면 금지하면 적어도 공정한 경쟁은 보장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한 조치가 또 행해진다면, 아마도 눈에 보이는 사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물론 지하 사교육은 더 팽창하겠지만) 그러나 이 역시 피나는 입시구조 그 자체는 그대로 둔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비정상적 경쟁 사회를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홈스쿨링, 예체능....그러나 목표는 언제나 '좋은 대학'

다른 예들을 보자. 가르쳤던 학생 중에 제도권 교육에 염증을 느끼며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홈스쿨링을 한 A학생이 있다. 이 아이는 학교에 다니는 대신 국내 여행을 착실히 다니며 글을 썼고, 각종 캠프에 빠짐없이 참여했으며, 읽고 싶은 책도 실컷 읽었다. 언뜻 보면 이 학생이 사람 잡는 비정상적 입시구조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 나선 것 같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아이는 다시 고등학교로 복귀하여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수능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모님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거나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학원으로 찾아와서 꼬치꼬치 캐묻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더 진행해 줄 것을 당부하곤 한다. 그간의 홈스쿨링을 통해 몸에 익힌 '자기 주도 학습'을 입학사정관제에서 활용할 구석이 없을지, 늘 대학 입학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했다. 역설적이지만 학교 밖에서의 삶을 통해 스스로 '좋은 대학'에 가야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명문대에 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고, 마침내 성공했다. 부모도 아이도 대성공이라며 크게 만족했음은 물론이다.

한편 학생 B는 음악이 하고 싶어서 부모님과 무던히도 싸웠다. 가출을 두 번이나 했고, 부모님께  A4로 5장이나 되는 장문의 글을 써서 왜 음악이 자신에게 그다지도 중요한지 절절히 설득하기도 했다.  괜찮은 성적으로 자사고에 입학한 후 시작된 일이었다. 부모가 용납할리 없었기에 싸움은 길고 처절해졌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은 아이가 승리하여 학교에 자퇴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지금 B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음악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생활은 생각보다 팍팍하다. 기대한 만큼 행복하지도 않다. 그 녀석의 말은 이렇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은 대학 가려니 쉽지 않네요.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여요. 이렇게까지 해서 음악을 하는데 혹시 성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해서...그리고 저도 꼭 Y대에 가고 싶어요."

애초에 실용음악과를 가려던 B는 주변의 만류로 클래식 음악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몇 개 안 되는 실용음악과는 아직 불안정한 면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오히려 명문대의 클래식 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을 공부해 본 사람들의 지론이었단다. 결국 명문대 음대를 목표로 한 B는 국어영역과 영어영역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며 이전보다 더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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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모의고사 모습.
ⓒ 김행수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발간한 <아깝다 학원비> 같은 책을 읽거나, 여타의 사교육 하지 말자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어떻게 공부를 잘 하게 할 수 있을까요?"
"수능 말고 입학사정관 제도나 다른 전형을 잘 활용하면 성적이 좀 떨어져도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국내 대학은 너무 힘드니까 사교육 할 돈으로 차라리 외국에 보내면 어떨까요?"

하는 물음들과 그에 대한 답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마땅할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명문대와 그렇지 않은 대학의 서열차이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요?"
"수도권과 지방 대학의 차이를 어떻게 없앨까요?"
"전문계 고등학교들이 더 클 수 있는 방안은 없나요?"

그러나 이런 질문은, 그 근본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던져지지 않는다. 개인들이 제기하고 실천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버거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당한 전문성과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당장 내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사교육은 피부로 와 닿는 문제이지만, 그것을 탄생하게 한 큰 괴물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또 너무나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단시일 내에 성과를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중성 속에 갇혀 있는 한, 사교육 문제는 영영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힘들여 만든 사교육 억제안이 늘 실패하고 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패러다임의 변화, 불가능할까

물론, 학벌주의 사회 전체에 메스를 대려는 움직임도 없지는 않다. '학벌없는 사회'를 꿈꾸는 여러 활동들이 있다. 교수들을 중심으로 해서 학술적인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 국립대 통폐합 문제나 대학 평준화와 같은, 지금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해보이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 문제들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 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이지만, 수능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고등학생들의 운동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제도권에서는 그저 사교육만 잡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실제 교육정책이라고 하는 것들도 모두 사교육 잡기에만 집중되어 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어떻게 하면 덜 할 것인가에 골몰하다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관심을 꺼버린다. 사실 대학 진학 후에도 만만찮은 사교육비가 들어가는데도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내 아이가 기말고사를 보고나니 꼴찌에서 두 번째라고 한다. 아직 저학년이라 여유를 두고 많이 안 시켰더니 과학과 사회에서 70점대를 받아왔다. 국영수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등수가 너무 형편 없어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다들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 "괞찮아"라고 편안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공부하는 기쁨을 알고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하고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좋겠다.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이 '입시'와 어떻게 짝을 이루어 갈 수 있는지, 특히 경제적 문제와 어떻게 조화될지 그 부분에서 대단히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결국 기존의 삶과 새로운 삶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시기가 온다면 언제쯤인지 늘상 고민이다. 그래서 지금은 일종의 안전망을 치듯, 계속 아이에게 공부는 중요한 것이고, 대학도 잘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마음속으로는 달리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대학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좋은 대학 가는 것하고 행복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엄마 아빠는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대학 안 가면 어때? 착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면 돼."

그러나 그런 말은 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말이기에. 마음속으로만 담아 두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하게 되면 정말 좋겠다.

"대학에 가야만 사람대접 받고 좋은 대학 나와야 좋은 직장을 가던 시절도 있었지. 지금은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어. 요즘 직업 고등학교가 얼마나 좋아? 옛날 대학보다 교육 수준이 더 높아. 우리 때는 꿈도 못 꿨던 일인데. 일반고 가서도 하고 싶은 과목 위주로만 공부하지? 야아~~ 엄마는 못 하는 수학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몇몇 사립대가 아직도 명문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뭐 괜찮아. 통합 국립대가 돈도 안 들고 굳이 서울까지 안 가도 되니까. 하긴, 이제는 대학 진학률이 그렇게 높지도 않고 꼭 대학 가야될 필요도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선택해. 너 이제 중 3인데 이번 방학엔 전국일주 여행하면서 진로 생각해 볼까?"

8월말, 박근혜 정부의 대입 간소화 방안이 발표된다고 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 미봉책이 될지 모르겠으나, 입시 종사자들은 복잡한 심경이다. 당장의 생계 문제를 생각한다면 사교육이 유지되기를 바라겠으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 자녀들이 학벌 때문에 괴로울 것을 생각하면, 또 우리들 스스로가 자녀문제로 힘들 것을 생각하면, 이 미친듯한 경쟁사회가 계속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장벽이 많다 해도 사교육자들도 수긍할 만한, 원칙과 대의가 분명한 대책이 나온다면 그 누구도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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