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의 길을 여는 어느 아빠 선교사의 고백

홈스쿨기사



홈스쿨링의 길을 여는 어느 아빠 선교사의 고백

보아스 1 2,829 2015.04.07 10:32
홈스쿨링의 길을 여는 어느 아빠 선교사의 고백


 -임스데반 선교사 (태국, GMP)


언젠가 한국에서 온 방문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홈스쿨링을 하게 된 과정을 나누게 된 적이 있었다. 친한 분이었기에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부모로서 우리가 마음 깊이 갖고 있던 “우리 아이가 부모의 새로운 시도에 희생될 수도 있는데...” 라는 불안감 등에 대해서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빈이는 말없이 우리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었다. 대화가 있던 다음날, 지빈이가 조용히 내게 와서 묻는 것이었다. “아빠, 희생된다는 게 무슨 뜻이야?” 내가 그 뜻을 설명하자, “내가 희생될 지도 모른다면서, 왜 홈스쿨링을 했어?” 라고 물었다. 질문하는 지빈이의 눈에는, ‘항상 최선의 것을 해 주리라는 아빠, 엄마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홈스쿨링을 결정하기까지

우리 가정이 홈스쿨링이란 길을 가게 된 데는 주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결혼 전부터, 아내와 나는 선교사 자녀(MK) 교육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곳에서 일했다. 지빈 엄마는 성경번역선교부(GBT)에서 선교사 자녀교육 담당 간사를 했고, 나는 한국선교훈련원 (GMTC)에서 일하면서 선교사들의 자녀교육 문제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가까이서 체험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선교지에 나간다면 내 아이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곤 했다. 그러나 아직 아이도 없었고, 또 홈스쿨링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상황에서 우리에게 있어 홈스쿨링은 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홈스쿨링에 대한 실제적인 도전을 받은 것은 93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훈련생들의 선교현지 실습 인솔자로 마닐라에 1개월 반 가량 머물게 되었다. 그 기간 중 미국 선교사 한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집은 세 자녀를 모두 홈스쿨링으로 키운 가정이었다. 마침 지빈이가 태어나 돌을 앞두고 있던 때라 자녀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고등학생이 된 두 자녀는, 중등과정까지 홈스쿨링으로 마치고 당시에는 마닐라 외곽의 선교사 자녀학교 (Faith Academy)에 다니고 있었는데 성적이나 학교생활 면에서 탁월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부모가 자랑을 늘어놓았다. 막내는 초등학교 5년으로 여전히 엄마와 홈스쿨링을 하고 있어서, 사용하고 있는 교육자료, 교실(부모의 침실) 등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막내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니?” 그 아이는 ‘왜 이런 질문을 하나’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니요! 엄마랑 공부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요.” 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모습이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아이를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닐라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아내와 나는 우리 가정에서 홈스쿨링을 해 보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던 것 같다. 95년 훈련원을 사임하고 태국 선교사로 나가기로 결심하면서 홈스쿨링 문제는 좀더 실제적인 이슈로 우리 대화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세 돌이 막 지난 어린 나이였지만, 지빈이도 이 대화의 일원으로 늘 함께 대화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통해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는 홈스쿨링을 진행하면서 실감했다. 또 함께 합의해서 시도했기에 우리 가족들은 최소한 홈스쿨링에 관한 한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지(?)가 될 수 있었던 같다. 태국에 들어오기 전 안식년으로 1년 간 필리핀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영어로 하는 홈스쿨링이지만 더 많은 사례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가정도 홈스쿨링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홈스쿨링을 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들

우리 가정이 홈스쿨링을 결심한 주된 동기 중의 하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한국적 정체성을 심어주고 싶어서였다. 어차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우리는 한국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짰다. 한국 커리큘럼을 통해 우리 아이에게 한국적 정체감을 심어주고, 어느 정도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적절한 홈스쿨링 교재도 없었고, 선례가 거의 없었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선교지에 있는 일반학교에 보내면서 한국 커리큘럼을 병행해서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일제로 한국 커리큘럼만 운영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시도였기에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의 동기는 무엇보다 실제적인 문제, 즉 재정적 면이었다. 우리가 일하게 될 방콕은 국제학교들이 여럿 있었고 어느 정도 선택의 폭도 있었다. 그러나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나는 소속된 선교부의 정책을 따라 “페이스 미션”(Faith Mission: 재정적 필요에 대해 직접 요청하지 않고 오직 기도를 통해 공급받는)을 하기로 했다. 목사 안수도 받지 않았고, 신학 학위도 국내 교단 배경이 없는 해외에서 받은 나로서는 모금에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때문에 홈 스쿨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또 다른 동기는 좀더 선교 정책적인 면이다.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지 모르지만,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 대상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그리고 이는 많은 경우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선교사 자녀가 다닐 수 있는 국제학교는 대부분 대도시 안에 있기에 선교사 대부분이 대도시 안에 밀집되어 있게 된다. 가족이 헤어지면서까지 오지로 가시는 분도 있지만 최선은 아니다. 특히 우리 가정의 사역대상의 경우 대부분 교육환경이 어려운 지역에 분포하고 있어 적절한 자녀교육 대안이 없으면 이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면 최소한 두 텀 또는 세 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정도는 지역에 구애됨 없이 선교사가 사역적 필요를 따라 융통성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기에 이 점에서 우리 부부는 선구자적 시도를 해 보고 싶었다. 홈스쿨링이 한국 선교의 새로운 자녀교육 대안이 되려면 그 열쇠는 그 누구보다도 선교사들 자신에게 있다. 선교사 자신들이 어느 정도 부담을 갖고 시도하고 다양한 케이스들을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서 새로운 교육대안을 만들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기까지의 어려움

우리 가정이 선교지에 도착하여 홈스쿨링에 대해 선배 선교사님들께 말씀드렸을 때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여러 분들이 염려를 하셨다. 아직 홈스쿨링의 개념도 정착되지 않은 우리 교육상황에서 홈스쿨링은 모험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분들은 특히 영어에 대한 나름대로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또 하나는 한국사회에서는 대학진학이 중요한데 학적이 없는 홈스쿨링은 아이 장래에 어려움이 될 수 있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다음은 우리가 고민했던 문제들이다.


• 홈스쿨링의 현실: 우리 교육의 황무지 오지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어쩔 수 없이 홈스쿨링 하고 계신 분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이 분야는 거의 개척되지 못한 황무지였고, 한국 상황에서는 이해가 전무했다. 선교부 자체도, 우리가 느끼기엔, 학교에 보내면서 병행해서 한국 교과를 보충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했다. 심정적인 지원을 해 주는 분들이 있었지만, 외로운 시도였다.


• 영어에 대한 부담 어차피 해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교육받아야 할 언어는 영어이다. 그런데 한국 커리큘럼으로 홈스쿨링 하는 것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잃어버리고 한국어 교과능력은 어중간해 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어차피 중등과정부터는 영어로 전환해야 하기에 초기부터 영어교육이 어느 정도 같이 가야 했다. 또 한국에 갔을 때 영어라도 잘 해야 (어차피 한국어로 한국에 있는 아이들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다. 그래서 지빈이의 영어기초를 위해 영어로 공부하는 유치원을 보내기로 하고 1년 반 가량 영어로 공부하게 했다. 일찍부터 논의를 했기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사랑 초등학교”(우리 가정의 홈스쿨링 이름)을 시작한 이후에도 영어 홈스쿨링 교재 일부를 병행하면서 영어 감각을 유지시켜주려 애썼다. 우리는 실제로 해 보지 못했지만 미국 등의 교포 2세 등과 협력하여 영어 교육이 병행된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 시간 운영에 대한 불안 우리 부부는 그리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못된다. 집에서 학교를 운영하려면 원칙에 따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좀 자유분방한 편이다. 또 손님도 자주 올 텐데 그 땐 어떻게 시간을 운영할 것인가 등등 실제 운영에 대한 불안감이 많았다. 실제 이 문제는 홈스쿨링을 하면서 내내 씨름해야 했던 문제였고, 되돌아보면 이 점에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 실패에 대한 심리적인 두려움 자녀교육에 대한 모험은, 실패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만약 잘못하여 아이 생애에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 된다면...’ 하는 불안감(어쩌면 죄책감?)이 가장 싸우기 힘든 싸움이었던 것 같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기에 우리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평가해 볼 수 없었고, 그러기에 이 불안감은 우리가 늘 안고 가야 할 부담이었다.


은혜스러운 시작

여러 예상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셨다. 예사랑 초등학교(홈스쿨링의 이름)는 98년 8월초에 개교식을 갖고 성대히(?) 시작되었다. 학교명, 교훈도 함께 정하고 교실 단장도 했다. 가까운 선교사 몇 분이 오셔서 예배와 함께 축사도 해 주었다. 의미 있는 출발이 무척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모임이었다.

수업은 집의 한 방에 교실을 꾸미고 진행되었다. 시간 진행은 법정 시간 수를 약간 축약하고(40분 수업), 영어를 첨가하는 등 우리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사용하였다. 시간은 오전 8시 30분에 경건의 시간을 시작으로 두 과목을 하나로 묶어 80분씩 두 차례 수업을 했다. 경건의 시간을 합쳐 오전에 5교시의 수업을 한 셈이다. 오후에는 주로 영어 홈스쿨링 교재를 중심으로 영어과목과 예체능 과목을 했다. 예체능 과목은 미술을 전공하고 근처에 살던 홍지아 자매와, 다른 지역에 피아노 단기 교사로 온 정혜정 선생의 도움을 받아 실시했고, 수영을 중심으로 체육시간도 가졌다. 교사 이동이 잦아 정기적이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지빈이는 예체능 시간을 그리워한다. 영어과목은 아빠가 담당했는데 더운 오후에 지친 상태에서 영어를 하자니 짜증도 내고 자주 교실이 전쟁터(?)로 변하곤 했다.


또, 홈스쿨링 초기에 엠케이 네스트의 소개로 만난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이은숙 선생님을 통해 실제적인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 선생님은 태국에 직접 와서 개교식을 도와주시고, MK 캠프와 함께 교육자료 지원, 자문, 방문 교육 및 평가 등으로 우리에게 심리적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무엇보다 교직 일선에 있는 분이기에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심리적인 불안감이 힘든 요인 중의 하나인데, 우리를 이해하고 후원하는 이런 분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였다. 이은숙 선생님 외에도 같은 학교의 윤혜순 선생님 등이 직접 오셔서 주변의 MK들을 모아 캠프도 열고, 지빈이의 학력평가, 부모 교육 등으로 지원해 주셨다. 우리로서는 큰 동지를 만난 격이었다.

공부하면서 겪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

짐작하듯이 홈스쿨링의 가장 큰 어려움은 부모가 교사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조금만 힘들면 짜증내고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한다. 학교라는 그룹 속에 있었다면 참을 문제도 홈스쿨링에서는 문제가 된다. 부모라도 절제되고 원칙적인 성격이었다면 어느 정도 보완이 되겠지만 우리 부부의 경우는 그렇지 못해 수업시간이 자주 험악(?)해지기도 했다. 아이의 학습동기를 유발해주고 흥미 있게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재 등이 없는 상황에서 수업을 하자니 자발적인 수업분위기 유도가 힘들었다. 그러니 힘들어하는 과목이나 주제는 한동안의 긴장을 거친 후 부모, 자녀 양측 모두 포기하고 넘어갔다. 이런 과목은 아이의 발전이 없다. 예를 들면 지빈이의 경우 작문이 그 한 예다.


이웃 아이들과의 관계도 예기치 못한 경험이었다. 가난한 마을이다 보니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중 몇은 우리 교실 창가에 얼굴을 디밀고 교실 분위기를 흐리며 공부에 지친 지빈이를 유혹했다. 또 한 예는 지빈과 동갑네기로 가장 친한 친구 “앙”이다. 이 아이는 막노동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그나마 아빠는 바람나서 어디론가 가버렸고 엄마도 아이를 버려, 다른 사람이 데려다 키우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지빈이 태국어 선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아이 배경에서 나오는 각종 부정적 태도, 사고방식의 전수자 이기도 했다. 또 집 주변이 수풀이 많고, 마약 하는 청소년들이 널려있는 마을이었기에 늘 염려거리였고, 집에 하루종일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고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잡아두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전환기의 고민들

우리는 홈스쿨링을 진행하면서 세운 한가지 원칙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합의가 되면 언제든지 그만 두는 것이었다. 실제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한번은 지빈이가 잘못을 해서 반성문을 썼다. 초등학교 3학년 초였던 것 같다. 그런데 써 놓은 글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써 놓은 글이 유치원생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번은 경우는, 지빈이의 학습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홈스쿨링을 혼자 하다보니 경쟁상대가 없는데다가 지빈의 낙천적 성격이 가미되어 도무지 학습진전이 없어 보이는 때가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차례 중도하차 하고픈 순간이 있었다. 이때마다 가족 전체의 토론과 재합의 과정을 거쳤고 다시 힘을 모으곤 했다.


학적 문제도 전환기의 고민거리였다. 지빈이는 4학년 1학기까지 홈스쿨링을 했기에 이 기간의 학적이 없다. 나름대로 학적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성적표를 만들기도 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무학적(無學籍)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한국의 대학 입학 문제와 연관하여 문제가 됨을 나중에 발견했다. 12년 학적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경우 검정고시(초등학교 졸업)를 통해 학적을 만들기로 했지만, 이 점은 앞으로 홈스쿨링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또 다른 고민은 교재에 대한 것이다. 교과서를 사용하다 보니 한국적 상황을 기초로 한 학습내용 전달이 어려웠다. 우리 아이의 경우 이해력이 좋아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그룹 중심의 교과가 대부분인데 이 점도 교과진행에 어려움이 되었다. 결국 홈 스쿨 위한 교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경우 그렇지 못했다. 올 초(2001)부터 국내의 한 유명 학습지를 이용하고 있는데 흥미유발, 학습 평가 등 여러 면에서 기존의 문제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교재 역시 홈스쿨링용 교재는 아니기에 한계가 있다.


영어교육의 경험

영어교과의 학습 과정도 간단히 나누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장기적인 면에서 영어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지빈이의 경우 유치원도 영어유치원을 보내 기초를 마련했고 일부지만 미국 홈스쿨링 교재를 통해 영어교육을 병행했다. 영어권 사람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초청하여 지빈에게 영어 공부를 하도록 도왔다. 어떤 자매가 “신돌이 학습”이란 책을 주어서 읽었는데 한국 내에서 영어를 잘하는 아이 키운 사례를 적은 글이었다. 교육학적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영어를 배우려면 영어를 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라는 그분의 주장에 동의가 되어 그렇게 해 보려 애썼다. 영어로 된 영화 비디오를 자주 보여주려 했다.


영어 홈스쿨링 교재의 경우 초기에는 [ACE] 라는 교재를 썼다. 두가지 면에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첫째, 문제풀이 형식의 자율학습으로 진행되는 홈스쿨링 교재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영어로 계속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 비영어권 사람인 우리에게 맞아 보였다. 다른 점은 모든 학습내용이 신앙적 내용으로 이뤄져 있어 자연스럽게 신앙교육이 이뤄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사용 후 우리는 이 교재 사용을 중단했다. 문제풀이 능력은 느는데 실제적인 언어구사 기회가 없어 영어진보가 없었다. 이 교재는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쓰는 아이들에게 맞는 교재였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Sonlight] 라는 또 다른 홈스쿨링 교재를 썼다. 이 교재는 동남아(영어권) 선교사들 사이에 가장 널리 이용되는 것이고, 재미있는 소설, 전기 등을 통해 역사와 사회, 영어를 공부하도록 꾸며져 있는 홈스쿨링 교재였다. 영어수준이 너무 높아 벅찬 면이 있었지만 소설 중심의 교육이기에 흥미를 갖고 진행할 수 있었다. ([Sonlight]는 앞으로 한국 홈스쿨링 교재 개발의 한 모델로 추천하고 싶다.)


99년 초, 영어로 홈스쿨링하는 부모들을 위한 연례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풍부한 지원, 교육자료 등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다. 우리 상황을 가지고 강사와 상담을 했는데 우리 같은 경우 조언해 줄 말이 없다는 말로 싱겁게 상담이 끝났다. 단 한가지 중요한 조언은 해 주었다. 즉 두 개 언어로 홈스쿨링을 하는 경우 보조언어 커리큘럼은 2-3년 뒤처져 수업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즉 학습개념은 모든 언어가 유사하기 때문에 어떤 언어로든지 학습능력을 갖고 있으면 다른 언어로의 전환은,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개 언어를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학습할 경우, 언어구사는 조금 낫겠지만 학습능력은 결국 어느 한 언어 수준에 머물고 그 수준은 아마 상당히 뒤처질 것이란 말이었다. 이 조언은 앞으로 해외에서 한국어로 홈스쿨링 할 모든 분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말이다. 한가지 더 추가하고픈 것이 있다. 선교지마다 홈스쿨링 학생들이 이용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영어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지빈이의 경우 국제학교의 여름학기 프로그램, 다른 홈스쿨링 가정과의 교류, 영어권에서 온 방문자 등을 통해 적절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간의 시간을 뒤돌아보면서-얻은 것과 잃은 것

선교에 동참하면서 내게는 하나의 모토가 있다. “발전을 위한 수용 가능한 희생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에 따른 ‘수용 가능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려 했다. 홈스쿨링의 경우, 아이의 생애와 연관된 문제이고 되돌이킬 수 없는 큰 아픔이 될 수 있기에 쉽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 원칙을 적용하려 애썼다. 아이를 위한 최선/최상의 것만 고집하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아마 홈스쿨링 시도를 통해 약간의 ‘희생’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희생은 홈스쿨링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해외선교로 부르심 받을 때 이미 내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바라기는 또 다른 분이 ‘수용 가능한’ 희생을 감수하고 홈스쿨링이 이어져 선교사 자녀교육에 새로운 발전이 있길 바랄 뿐이다.


우리 지빈이는 타고 난 성품을 고려해 볼 때 그룹 속에서 자랐다면 좀더 리더쉽도 있고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3년간 가정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장점을 개발할 기회를 잃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는 모든 MK의 고민일 수도 있지만, 지빈이는 영어도, 태국어도, 한국어도(그래도 한국어가 가장 낫지만) 모두 어중간한 수준인 것 같다. 한가지 언어로 학습했다면 더 자신감을 가진 아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집단 속에서 자란 아이에 비하면 학습동기도 약하다.


그러나 홈스쿨링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다. 먼저 지빈이는 늘 부모와 함께 있었고, 그 누구보다도 부모와 깊은 사귐을 가졌다. 이 하나만으로도 위의 아쉬움들을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믿는다. 또 지빈이는 한국인으로서 분명한 정체감 갖게 되었다. 한국교과로 4학년 1학기를 마쳤기에 한국어 학습능력도 어느 정도 구비될 수 있었고, 한국적 정서를 가진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동시에 지빈이는 태국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마을에서 태국 사람들 사이에 살았기에 태국어도 잘 구사하고 무엇보다 태국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또 홈스쿨링을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기도 속에서 자랄 수 있었고 좋은 단기 선생님들, 방문자들과 사귀면서 다양한 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아이의 신앙교육이다. 홈스쿨링은 이 면에서 아이 생애에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리고, 홈스쿨링은 부모와 자녀 중심의 프로젝트이지만 동시에 많은 분이 함께 의미를 갖고 동역할 수 있는 장이었다. 우리 홈스쿨링에는 정말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하셨다. 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의 선생님들, 오은주, 변혜복, 홍지아, 정혜정, 그리고 현재 1년간 우리와 함께 살면서 동역하고 있는 박은혜 선생님... 더 많은 홈스쿨링이 시도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선교사 가족과 무릎을 맞대고 함께 선교를 위해 동역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발전을 위한 생각들

지난 여름 지빈이는 4학년 1학기를 마치면서 홈스쿨은 일단 마무리를 했다. 지난 8월부터는 근처의 영어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이가 너무 학교를 원했고 내년 안식년 후 돌아오면 어차피 영어학교를 들어가야 하기에 어느 정도 영어에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안식년 가기 원해서였다. 학습 면에서는 약간 고전을 하고 있지만 한국어로 공부한 아이치고는 그런 대로 학교생활을 즐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가정의 홈스쿨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한 유빈(둘째)가 1학년 과정을 홈스쿨링으로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빈이는 ‘언어장애’라는 특별한 어려움을 겪은 아이라 또 다른 형태의 경험을 하면서 홈스쿨링의 실험(?)을 통과하고 있다.


3년 여 짧은 홈스쿨링 경험을 통해 우리는, 홈스쿨링이 한국 선교사 자녀교육의 대안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쉽지 않은 걸음이었지만 아이 생애 전체를 놓고 봐도 결코 손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발전노력이 필요하다. 1) 홈스쿨링 교재가 개발되어야 한다. 학습목표를 이루되 흥미를 갖고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에 나와 있는 다양한 교육교재를 생각할 때 이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본다. 2) 영어에 대한 방안이다. 많은 분들이 영어를 생각할 때 홈스쿨링이 주저되리라 생각된다. 선교사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이기에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적절한 영어교재 제공과 함께, 영어권 교포들을 MK 교육을 위한 단기 사역자로 개발, 영어교육을 지원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예를 들면 방학 때 1개월 가량의 영어 인텐시브 과정 같은) 최소한 나중에 영어학교를 들어가게 될 때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교육이 필요하다. 3) 홈스쿨링 가정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이다. 홈스쿨링은 어떤 면에서 외로운 싸움이고 자주 낙심을 경험하는 여정이다. 여러 모양으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틀들을 개발해야 한다. 서양 사람들처럼 한국 홈스쿨러들을 위한 세미나 등도 대안이 되리라 본다.


나는 그렇게 가정적인 편이 못된다.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홈스쿨링을 하면서 변했다. 아내와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것 같다. 홈스쿨링은 우리 가정이 선교지 내에서 견고한 선교기지가 되도록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서두에서 나눈 지빈이의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우리가 선교사이기에 어느 정도 어려움은 피할 수 없단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너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해 왔단다. 아빠는 지금도 홈스쿨링이 네게 가장 좋은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Comments

하늘지기77 2019.02.10 14:48
홈스쿨링을 하려고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어서인지..뼈 속 깊이 새겨지고 잔잔한 감동을 주네요.
이 글을 정독하면서 혼란스러웠던 내면과의 질문들과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들이 조금씩 옅어지고 확신과 기대감으로 바꾸어 주네요, 진솔하고 구체적인 간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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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9남매는 모두 홈스쿨링 중” 이 가족이 살아가는 법 [속엣팅] 보아스 2022.09.28 2783 2
280 美, 공교육 우려 끝 크리스천 학교 설립 씨앗학교 2022.08.16 1650 3
279 10가구 중 1가구‥美 홈스쿨링 '급증' 보아스 2022.01.20 2042 0
278 프랑스의 홈스쿨링 관리 체계 보아스 2021.04.12 3056 3
277 홈스쿨링 아빠의 '내가 홈스쿨링을 하는 이유'? 보아스 2021.04.12 3394 4
276 집·책방···학교 아닌 곳 학교 삼아 다양한 활동하며 내게 필요한 공부해요 댓글+1 보아스 2021.04.12 3154 2
275 제주도 독수리 5남매의 웃음 일기 “홈스쿨이요? 홈스 쿨(Home’s cool)이죠. 쿨하게 멋진 집!” 댓글+1 보아스 2020.11.10 4455 4
274 홈스쿨링 금지 주장하는 좌파들, 왜? 댓글+10 보아스 2020.09.28 4166 7
273 홈대안교육과 홈스쿨링 도입 네아이아빠 2019.07.09 4220 4
272 동성결혼 반대했다고 ‘왕따’… 호주서 ‘홈스쿨링’ 증가 댓글+1 겨울 2018.09.17 5480 1
271 미국 홈스쿨링 경쟁력 어떻길래 계속 늘까 댓글+4 겨울 2018.09.11 14353 7
270 ‘6남매 아빠’ V.O.S 박지헌 “주님께서 부르신 사역지, 가정” 댓글+1 네아이아빠 2018.05.15 6501 6
269 '다둥이 아빠' 박지헌 "홈스쿨링 확신 있다, 아이들 방치 NO" [인터뷰] 댓글+1 네아이아빠 2018.03.26 9376 0
268 [인터뷰] ‘다둥이 아빠’ 박지헌 “아이들과 행복,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져” 네아이아빠 2018.03.26 5197 0
267 <ebs 라디오 행복한 교육세상>(2017년 12월 14일[목]) - 시네마 키즈 / 정근이네 정든방 (guest 임하영) 댓글+3 ljw2000 2017.12.20 439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