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고전학교를 열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전병국씨의 교육실험 6년

네아이아빠 2017-11-22 (수) 15:41 21일전 1066  
http://www.imh.kr/b/B19-607
▲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가족이 무너지고 있었다. 방향 없이 끌려다녔다. 욕망의 문화, 돈의 환상, 과대포장된 대학, 생각 없는 공부, 판단 없는 열심, 이웃이 빠진 성공신화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마다 크고작은 병을 앓고 있었다. 아빠는 돈벌이에 바쁘고, 엄마는 진학교육에 바쁘고, 아이들은 정해진 공부에 바빴다. 가족이 조각나고 있었고, 본연의 가치를 점점 상실해갔다. 다들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순응했다. 자잘한 오류가 가득한 거대한 시스템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이 가족은 과감히 빠져나왔다. 첫째가 중1, 둘째가 초5를 마무리 지을 무렵이었다. 두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고전 읽는 가족학교’에 입학했다. 학생은 단 4명.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아이가 전부다. 교사는 1000명도 넘는다.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등 불멸의 고전을 남긴 선현들이 모두 스승이었다. 가족은 아침마다 탁상에 둘러앉아 고전을 윤독(輪讀)하고, 생각을 나누었다.
   
   엔지니어이자 인문학자로 살고 있는 전병국(46)씨 가족의 이야기다. 그후 6년이 지났다. 첫째는 20세, 둘째는 18세가 됐다. 6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된 거대한 교육실험은 어떻게 됐을까. 전병국씨는 얼마 전 책 두 권을 한 번에 냈다. 고전 읽는 방법을 안내하는 ‘천년의 독서’, 홈스쿨링의 의미와 방향성을 안내하는 ‘고전 읽는 가족’. 책에는 두 아이의 개별적인 이야기가 빠져 있었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과 성장과정에서의 좌충우돌이 궁금했다.
   
   가족 인터뷰를 제안했으나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전씨 가족은 꽤 오랜 숙고 끝에 거절했다. “홈스쿨링은 하나의 대안일 뿐이고, 각자 다른 삶을 추구해온 것인데, 성공신화처럼 비쳐질까 봐 부담스럽다”는 이유였다. 지난 11월 13일 서울 태평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씨는 가족들의 의견을 먼저 전했다.
   
   “아이들의 인생에서 보면 지금은 시작 단계입니다. 뭔가를 해냈다면 같이 읽는 기쁨을 알게 된 정도랄까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규정하지 않는 게 나을 듯합니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소통할 때를 기다려주는 것이 맞는 듯 합니다.”
   
   두 아이는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다. 수학을 좋아하고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첫째 아들은 수학 관련 논문을, 마음과 관계에 관심 많고 논리력이 강한 둘째 딸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구상 중이다. 논문 발표는 6년간의 커리큘럼이 끝나는 내년 봄쯤 예정돼 있다. 논문의 형태와 발표 형식 등은 미정이다. 현재는 가설을 세우는 단계라고 한다.
   
   두 아이의 성장과 발전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6년 동안 뭘 배웠어?”라고 숱하게 물어오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공부의 맛을 알게 됐어요.” “고전 공부를 통해 인생 공부를 하게 됐어요.”
   
   전씨는 6년 전 시작한 모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도 미친 짓이었다”고 표현했다. 가족은 외관상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두 아이 모두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었고,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다. 아이들과 부모와의 관계도 이렇다 할 문제점은 없었다. 다들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양가 부모님 반대가 특히 심했다. 전씨는 “공부와 삶이 일치되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큰 아이가 사춘기였습니다. 아이가 점점 떠나는 것이 보였어요. 사춘기의 특성으로 볼 수도 있었죠. 그런데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귀중한 가치들을 점점 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가족, 진리, 신앙, 이웃사랑 같은 가치 말이에요. 그때 결정하지 않으면 떠나보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2012년 3월 ‘로고스 고전학교’ 문을 열었다. 전씨 스스로 “작고 이상한 학교”라고 했다. 또래 아이들이 입시공부에 매진할 때 두 아이는 100권의 불멸의 고전을 읽었다. 커리큘럼은 홈스쿨링과 고전 공부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전씨가 직접 짰다. 역사를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BC 500년까지의 근원의 시대에는 ‘창세기’ ‘파리대왕’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AD 1600년부터 현재까지 ‘통합의 시대’에는 ‘방법서설’ ‘올리버 트위스트’ ‘백범일지’를 읽는 식이다. 진도는 한 권당 한 달 기준. 책의 난이도와 비중에 따라 2~3달에 걸쳐 읽을 수도 있고, 읽은 책을 다시 읽기 할 수도 있다. 플라톤의 ‘국가’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왜’는 사라지고 ‘어떻게’만 남은 공교육
   
   ‘로고스 고전학교’에서는 교과서를 찢고 다시 만든다.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낱낱이 해부해 재구성한다. 미분과 적분까지 섭렵하지만 삶에 녹아든 수업을 지향한다. 가령 ‘햄버거 연구’를 통해 과학과 수학, 경제와 경영, 사회와 윤리, 문학과 예술을 배운다. 햄버거를 주제로 4~5분야로 나눈다. 전경린의 ‘맥도널드 멜랑콜리아’, 빅맥지수 분석, 맥도널드 성공비결, 알바 시급 비정규직 문제 등. 이렇게 나눈 분야로 4명이 제비뽑기를 통해 연구 분야를 정한 후 각자 연구에 매진한다. 2~3주 후 자신의 분야를 발표한다. 통합수업이 이루어지는 자리다.
   
   수업 시간은 달랑 2교시. 1교시는 90분, 2교시는 120분이다. 1교시는 고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사상가들을 만나는 시간이고, 2교시는 그 사상가들처럼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시간이다. 오후 시간은 자유다. 아빠 전씨는 이때부터 회사 일을 시작하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오전에 배운 내용을 심화시키는 시간을 갖는다.
   
   고전 공부는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답을 안겨준다. 전씨의 말이다. “공교육을 무조건 불신하는 건 아닙니다. 공교육에도 훌륭한 자산이 많아요. 다만 ‘왜’는 사라지고 ‘어떻게’만 남은 지금의 공교육 교육에 회의적입니다. 국영수 공부 자체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 공부를 어떤 방식과 철학으로 해야 하는가’의 개론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씨는 모든 배움에는 세 가지 과정이 있다고 말한다. 문법, 논리, 수사가 그것. ‘문법’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고, ‘논리’는 이해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며, ‘수사’는 배운 지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감동하는 것을 말한다. “인문교육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분석해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법학을 하든, 의학이나 예술을 하든, 농장을 운영하든 마찬가지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도 피아노 나름의 문법과 논리, 수사가 필요해요. 하지만 공교육에서는 이 세 가지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수학적 사고를 잘하는 것과 근대 이후에 정착된 수학적 기호를 잘 읽는다는 건 다른 차원이죠.”
   
   전씨는 고전 공부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한다. “고전 읽기는 낭만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이다”란 표현도 썼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고전 읽기는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광속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업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인공지능과 4차산업이 화두가 된 시대에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본질적인 고민이 더 깊어집니다. 인간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가를 묻는 고민 말이에요. 그 공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간은 가정입니다.”
   
   ‘로고스 고전학교’에서 시작한 가족학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외연을 확장해가고 있다. 고전 읽는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는 ‘고전 읽는 가족’, 공부법 훈련에 집중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하루학교’, 재능에 따라 음악하고 공연하는 봉사단체인 ‘로고스 청소년 앙상블’, 고전교육 관련 교육행사를 운영하는 ‘로고스 고전 세미나’, 고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고구마-고전 읽는 구도자 마을’ 등이 그것. 전씨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고전 읽는 가족’이다. 주1회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 한 달간 읽은 고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 규모는 10가족 정도. 대상 가족의 자격은 따로 없지만 학교와 병행이 어려워 홈스쿨링 가족만 참가하고 있다.
   
   고전 읽는 가족학교 운영에는 전씨의 역할이 막대하다. 한 개인이 하기엔 버거워 보인다. 그는 “소명의식이나 사명감이 없으면 힘든 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홈스쿨링의 역사는 10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홈스쿨러 1세대로서 감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아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2세대가 되면 다른 형태로 발전하겠죠.”
   
   
▲ 가족학교 ‘로고스 고전학교’에서 그간 읽은 책들(좌). 두 아이가 마주 앉아 파트너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photo 전병국

   엔지니어 & 인문학자의 길
   
   전병국씨는 공대 출신이다. 전산학을 전공하고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라이코스코리아에서 검색팀장을 거쳐 지금은 ‘검색엔진 마스터’라는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원래 인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아 인문학 서적을 죽 읽어왔다. 고전을 삶을 공부하는 대안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건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전산학과 인문학. 전연 무관한 영역으로 보이지만 전씨는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
   
   “UI(User Interface·사람과 컴퓨터 프로그램 간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검색엔진 이슈는 정보의 중립성과 검열입니다. 검색엔진이 미디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말 것인가’에 천착하게 됐죠. 선택의 문제였어요. 숫자적인 알고리즘으로 풀어내는 데에도 원칙과 철학은 있어야 했습니다. 그 답이 고전에서 보였어요. 밀턴의 ‘아리오파기티카’에서 답을 찾았습니다.”(‘아리오파기티카’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외친 문헌으로 언론자유의 ‘마그나카르타’로 불린다.)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도 컸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돈을 많이 벌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공동체 교육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오전에 아이들과 수업하고 오후에 회사 출근해서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서 다음 날 모임 준비를 하려면 밤 새는 일이 많았다. “극심한 외로움에 빠졌습니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믿고 모험을 떠난 가족들이잖아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다가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엄마는 자식 자랑을, 아빠는 야망을, 아이들은 또래들의 길을 포기해야 했다. 서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는 가족학교를 투명한 ‘유리학교’라고 표현했다. 크고작은 충돌이 잦았다. 기대감에서 오는 충돌일 때가 많았다. “배움의 공동체는 서로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온전함은 완벽함이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죠. 상대를 교육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려해서는 안 됩니다. 부족한 것을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온전함을 잃게 되죠.”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도 장애가 됐다. “제 스스로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권위가 떨어지면 가르치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아이들이 정답을 기대한다고 착각했죠. 미분 적분을 가르칠 때에는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인문학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빠를 좋은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건 완벽한 선생님이어서가 아니에요. 늘 가까이에 있어주시고, 틀린 것을 인정하고 바꿔가려는 모습이 좋아 보였서였죠.”
   
   그에게 “아이들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냐?”고 묻자 한참 생각하더니 “선배와 멘토 중간쯤”이라는 답을 내놨다.
   
   홈스쿨링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틀에 얽매이지 않아 창의적인 사고를 마음껏 펼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반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규칙과 관계, 어휘 등에서는 다소 부족할 수 있다. 또래 친구 관계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이 부분은 고전가족학교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힘을 길러준다. 그가 주축이 된 다양한 고전학교에 중·고등학생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모두 선후배 관계가 된다. 수평의 친구는 없지만 수직의 친구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생은 형을 보고 배우고, 형은 동생을 지도하게 된다.
   
   전병국씨는 신중했다. 공교육은 엉터리이고, 홈스쿨링이 이상적인 것으로 비쳐질까 봐 단어 선택 하나에도 신중을 기했다. 그는 “나는 인문교육 지상주의자도 홈스쿨주의자도 아니다. 고전을 정답처럼 바라보는 시각도 반대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고전가족학교는 삶과 교육이 일치된 공간을 위한 하나의 조건입니다. 홈스쿨링은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일 뿐이죠. 우리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우리 부부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전부라면 홈스쿨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공부가 다른 가족이나 한국 사회에 또 다른 것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보다 더 큰 것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있다면 견딜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견디기 힘들 거든요.”
   
   

   불멸의 고전, 따뜻한 기술, 느슨한 연대
   
   전씨가 생각하는 교육의 정의는 분명하다. “공부와 삶이 일치되는 공간을 창조하고, 그 공간에서 진리를 실험해가고, 그 실험을 공동체가 지지해주는 것.” 이를 위해 전씨는 작은 씨앗을 뿌리고 있다. 2012년 3월에 시작한 6년간의 커리큘럼은 내년 봄에 끝난다. 하지만 ‘로고스 고전학교’는 계속된다. 이 학교는 가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이어진다. 2교시 심화수업은 끝나지만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고전을 읽어가는 1교시는 고전 읽기 수업은 주욱 이어진다.
   
   전병국씨가 좋아하는 표현 세 가지가 있다. ‘불멸의 고전’ ‘따뜻한 기술’ ‘느슨한 연대’. IT 분야에 종사하면서 따뜻한 기술을 꿈꾸고, 불멸의 고전을 함께 읽으며 이어가는 느슨한 연대는 가족을 탄탄하게 지탱하는 힘이다.

출처: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483100013&ctcd=C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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