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하는 상언이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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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링하는 상언이네 가족

박진하 0 2,490 2008.02.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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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러 상언이네 가족. 아버지 김시영씨와 어머니 신은정씨.
'…매일 아침 일곱시/삼십분까지 우릴/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집어넣고 있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노랫말이다. 이 노래에 영향을 줬다고도 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벽 속의 또 다른 벽돌(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린 이런 식의 교육은 필요 없어/…아이들을 제발 내버려 둬//결국 모든 건 벽돌이 되어/내 주변에 벽을 만들어갈 뿐….'

홈스쿨링을 하는 상언이네를 찾아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으로 가는 동안 이런 노래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규격화된 교육을 거부한 가족. 그 가족의 홈스쿨러 상언이는 학교에 다니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12살이다.

"상언이가 어릴 때부터 저희 부부는 학원을 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보다 소홀했던 것 같아 늘 미안했지요. 그 때문인지 아이가 우리와 같이 있는 걸 좋아해서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학교를 파하면 꼭 학원에 와서 놀았으니까요."

아버지 김시영(36)씨는 부산대 영문과를 나왔다. 어머니 신은정(39)씨는 같은 학교 수학과 출신.

"학교를 두어 달 다니던 아이가 그랬어요. '학교 안 갈 수 없느냐'고요. 농담처럼 '홈스쿨링'이라는 게 있다고 했더니 그걸 하겠다는 거예요."

2003년, 그렇게 별 갈등도 없이 홈스쿨링 가족이 됐다. "학교에서는 제도권에 머물기를 바라셨지만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다음엔 동사무소에서 확인전화가 왔는데 '부모가 책임지고 하라'더군요. 원래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데, 부과된 적은 없답니다." 그렇게 법적으로도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커리큘럼을 직접 짜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정해진 틀이 없어서 나태해지기도 쉽지요. 하지만 저희는 되레 긍정적으로 돌렸습니다. 학교에서는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상언이는 2~3시간도 매달립니다. 그래도 안 풀리면 그냥 중단합니다. 오전엔 독서, 신문 보기, 야외활동을 하고 오후엔 수학 같은 교과 학습을 하며 저녁엔 영어 위주로 스스로 공부합니다."

적어도 상언이네에서는 홈스쿨링의 단점보다 장점이 많았다. 김씨는 "장점이 단점을 묻어버렸다"고 표현했다. 물론 "부모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단서는 달았다. 2004년 김씨네는 학원을 접고 집에서 공부방을 열었다.

" 다양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니 사회성 기르기는 더 낫습니다. 아이와 오래 붙어 있으니 장단점을 파악하기도 쉽고요. 창의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긴 했다. 상언이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같은 말을 많이 했다.

"책 읽는 게 제일 좋은데, 800권 정도 봤습니다. 경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많은 미국 시카고 대학에 유학가고 싶습니다. 빌 게이츠처럼 유명한 CEO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친구들에겐 홈스쿨링을 권하고 싶지 않단다. 부모님이 모두 찬성하고 밀어주시진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은근한 부모 자랑이다.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아이와 부딪치는 게 지긋지긋해져서 '빨리 개학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라면 어려울 것도 같다.

시선을 돌려 보면 홈스쿨링은 이제 흐름을 탄 것 같다. 미국에선 홈스쿨러 숫자가 100만명 단위다. 프랑스 호주 영국 대만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는 합법화했다. 다양성의 가치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인하대가 지난해에 홈스쿨러 10명을 수시모집으로 뽑았다.

"뚜렷한 결과가 없어 잘 키웠는지는 자신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서로 배우면서요. 다만, 교과서 정도도 지원해 주지 않는 정부는 못내 섭섭합니다."

이진원기자 jinwoni@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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