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과외? 해외 유학? 전, 영어 공부를 한 적도 없는걸요” | ||||||||||||
충남의 끝자락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 만수산 휴양림에 미처 도달하기 전에, 40가구 정도 모여 사는 마을로 들어가면 웬만한 휴대폰은 이미 통화권 이탈. 학원은커녕 책 한 권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곳. 이곳이 영어 영재 나기업군이
나기업군(15)을 만나면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대면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 과정 6년을 공부해도 영어로 자기소개 하나 매끄럽게 못 한다. 입시 위주 교육은 학생들에게 맘 편히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기업이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입시 위주의 공교육에 회의를 느껴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치르고 열네 살에 외국어 특기생 자격으로 한남대학교에 입학했다. 지금은 휴학 중이고 전공을 바꾸기 위해 다른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제가 다녔던 과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앤드 컬처(국제 의사소통과 문화)였어요. 전 과목을 원어민 교수가 영어로 강의하는 곳이죠. 국제 의사소통 과정을 무척 세밀하게 다뤄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경영이나 국제경영 쪽으로 전공을 바꾸고 싶어요.” 영어는 앞으로 기업이가 나아갈 길의 수단일 뿐 그 길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정규 교육 과정으로 따지면 중학교 3학년인 기업이는 영어권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자유롭다. 학원도 다닌 적이 없으며 그 흔한 영어 텍스트도 사본 적이 없다. 부모가 영어에 능통한 경우도 아니다. 부모가 영어 공부를 하면서 지불한 돈은 30만~4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제 영어 선생님은 비디오 ‘토이스토리’예요. 다섯 살 때부터 무조건 비디오만 봤어요.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아빠 역시 일하느라 항상 집에 혼자 있었어요. 작은 동네라 친구가 없어 자연히 비디오에 몰두했죠.” ‘토이스토리’를 하루에 두 번씩 계속 반복하며 봤다. 굳이 영어의 비결을 말하자면 비디오를 틀어놓고 일을 나간 ‘부모의 방치’ 덕분이었던 것. “그럼 저희 부모님이 너무 무책임하게 보이니 ‘건전한 방임’이라고 해주세요(웃음).” 한글 자막도 없는 비디오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마냥 재밌어서 봤다. 결국 비디오에만 너무 몰두하는 아들이 걱정된 부모는 다른 만화를 보여주기 위해 애를 썼다. “어떻게든 그 비디오를 못 보게 하려고 기업이를 두고 외출할 때는 비디오를 숨겨놓고 나갔지요. 그런데 어떻게 발견했는지 귀신같이 찾아서 보고 있더군요.” 부모가 기업이에게 시켜준 유일한 영어 공부는 단어 카드였다. 세 살 전후의 아들에게 영어 단어를 숙지시키는 정도였다. “어머니는 단어의 뜻을 말로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실제 사물을 지목해서 알려주시곤 했어요.”
이것이 ‘산골 소년 영어 영재 학습법’의 전모다(구체적인 학습법은 뒤에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이에게 물었다. 영어가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느냐고. “아니요. 저는 영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걸요.” 홈스쿨링을 시작하다
“첼로는 참 이상한 악기예요. 모든 악기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요. 나쁜 짓을 생각하다가도 악기를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요.” 기업이의 꿈은 국제 외교관이다. 그러나 그걸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군이 있는데 벌써 정하기에는 이르다는 것. “하나를 선택해 그곳만 바라보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제가 지금 할 일은 오로지 공부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될지는 앞으로 3년 뒤에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죠.” 여태까지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기업이. 영어권 나라에 가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니요”라고 당차게 말한다. 이유는 갈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란다. 영어가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영어를 못해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의 지식 인프라가 부러운 요즘이다. 그러나 ‘지피지기 백전불태’란 말이 있다. 적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영어가 그 수단이다. 기업이의 목표는 영어가 아닐 것이다. 영어를 발판으로 더 큰 꿈을 이룰 것이다. 지켜보자. 나기업군이 추천하는 영어 공부 10가지 포인트 영어 단어 카드를 만들어 단어에 익숙하도록 하자
기업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디즈니 만화를 주로 봤는데 좋은 점은 내용 중간에 뮤지컬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노래가 들어가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서 오래 못 본다. 또 그 노래들을 평소에도 흥얼거리게 한다. 그렇게 노래부터 외우게 되고 그 다음 노래 전후 대사도 외우게 된다. 그렇게 반복하면 결국 영화 대사를 전부 기억하게 된다. 영어 발음 그대로 따라 하기 비디오를 보면서 영어를 그대로 따라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I want you to be more careful before you make such a sensation like that.‘ 이런 대사가 나오면 누구나 바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안츄 루 이어 캐훌 퍼 유맥 쳐 센션 락 댓’ 정도로 따라 해보자. 이조차 안 된다면 허밍으로 해보는 것도 좋다. 모든 언어는 인토네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굳이 문법을 주입시키지 않아도 된다 기업이는 문법 공부를 한 적이 없다. 문법을 전혀 모르는 아이가 걱정된 아버지가 억지로 수동태, 부정사 등에 대해 가르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기업이는 영어 문장의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는 귀신같이 알 수 있다. 흡사 한국인이 국어를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말하는 데 불편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어로 말할 때는 문법을 생각하지 말자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상 말을 문법 공식에 맞춰서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한 문장을 생각할 때 15초 이상 걸린다. 외국인에게 정확한 문장을 얘기하려고 또박또박 말하기보다는 문법이 틀리고 전치사를 빼먹어도 빠르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들도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 한 문장을 말하는 데 15초 이상 걸리는 사람을 계속 기다려주겠는가. 영어가 어느 정도 된다면 ‘프렌즈’와 친구하자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미국 TV시트콤 ‘프렌즈’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선 이 시트콤은 상당히 재밌다. 매순간 웃음이 나오고 주인공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도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은유적인 기법이 많아 강력 추천한다. 일상적인 언어의 유희가 매력적이다. 꼭 텍스트로 삼아보라 권하고 싶다. 단어는 문장 내에서 공부하자 단어는 단어로만 달달 외우는 것은 회화에 별로 도움이 못 된다. 단어는 무조건 문장 속에서 외워야 제대로 써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Promise’와 ‘Appointment’의 뜻을 둘 다 ‘약속’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두 단어의 쓰임은 전혀 다르다. ‘Promise’는 ‘뭘 하겠다’는 맹세를 뜻하는 말이고, ‘Appointment’는 상대방과의 시간이나 장소를 정할 때 쓰는 말이다. 외국어는 어릴 때 하는 것이 맞다 언어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영어에 노출되지 않고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의사소통하려면 최소한 1만6천80시간이 걸린단다. 하루에 2시간씩 해도 무려 16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업이가 정규 과정을 통해 하루에 한두 시간씩 영어 공부를 했다면 지금처럼 영어 영재가 될 수 있었을까?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더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자료 협조 / 「산골 소년, 영화만 보고 영어 박사 되다 」(좋은 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