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자유롭게 공부하는 맞춤형 학교"

홈스쿨기사



"우리집은 자유롭게 공부하는 맞춤형 학교"

박진하 1 2,234 2009.08.20 23:01

홈스쿨링_ 집에서 공부하는 준호

김준호(15)군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부랴부랴 아침 먹고 가방 챙겨 학교 가는 '등교 전쟁'이 뭔지 모른다. 동네친구들은 인근 경기 안산 성포중학교 2학년이다. 친구들이 학교 갈 시간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는다. 식사를 끝내고 하루 공부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어머니 이숙현(39·경기 안산 월피동)씨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정한다. 빈둥빈둥 하루를 보내는 일은 절대 없다.

"하루치 (공부)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달성하려 해요. 여러 과목을 이것저것 공부하느니, 한 가지 공부라도 확실히 매듭짓는 것이 공부효율에 좋아요. 선택과 집중이 제 공부 원칙이에요."

◆홈스쿨링이란

이숙현씨는 아들 준호의 중등과정 의무교육을 거부했다. 대신 집에서 재택교육을 한다. 이를 '홈스쿨링'이라 부르는데, 규격화되고 획일적인 학교 대신 아이의 적성과 특성에 맞게 직접 가르치는 방식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전역에 130만~150만명의 학생이 재택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총기사고와 마약·음주·폭력 등 학교의 어두운 면 때문이다.

한국 역시 획일화된 학교교육에 실망한 학부모를 중심으로 홈스쿨링이 느는 추세다. 출결·성적·경쟁·왕따 같은 학교문제에 아이들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숙현씨의 얘기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준호가 손톱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애도 애지만, 엄마인 저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친구들끼리의 경쟁 대신 하고 싶은 공부에 집중하도록 돕고 싶었어요."

준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학교에 안 다닌 지도 벌써 1년6개월이나 됐다. 그러나 또래들이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부를 제법 많이 했다. 수학은 학습지 진도에 맞춰 공부하더니 어느새 고교 1학년 과정인 '10-가·나' 수준이다. 영어는 동네 어학원에 다니며 회화·문법·독해를 익혔고, 인터넷 강의를 통해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배우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나 역사, 과학 같은 과목을 등한시 하지 않는다. 매일 공부하진 않지만, EBS 강의를 꾸준히 들으며 과목당 두 단원씩 진도를 나갔다. 그 결과, 과학 과목은 고교과정 수준이다. 내심 검정고시로 과학고 진학도 꿈꾸고 있다.

김준호군과 어머니 이숙현씨. 이씨는“홈스쿨링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선택해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이구희 기자 poto92@chosun.com

아이에게 '올인'해야

준호의 하루 공부계획을 더듬어 보자. 5월 27일자 계획표에 적힌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9시 50분~11시 25분까지 영문법 공부, 오전 11시 25분~낮 12시까지 영어 듣기 공부, 낮 12시~오후 1시 10분까지 점심, 오후 1시 10분~1시 50분까지 영어 단어 외우기, 오후 1시 50분~2시 50분까지 중국어 회화(인터넷 강의), 오후 2시 50분~3시 15분까지 중국어 작문, 오후 3시 15분~3시 40분까지 영자 신문 읽기, 오후 3시 40분~5시 30분까지 수영하기.'

계획표에는 오후 5시 30분 이후의 공부계획은 적혀있지 않다. 아마 저녁에는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루 공부량을 다 채우면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동네 청소년수련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귀띔했다. 준호의 얘기다.

"혼자 하는 공부이니 틀린 문제를 해결 못하는 것이 힘들어요. 모르는 문제는 학습지 선생님이나 어머니 도움을 받아요.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책을 꼼꼼히 다시 훑어 의미를 다시 더듬거나 인터넷에 질문을 올려 답을 찾아요."

이씨는 아들의 공부를 일일이 간섭하진 않는다고 했다. "공부해야 할 큰 테두리는 아이와 함께 결정하고 하루 공부량이나 시간배분은 스스로 계획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전적으로 맡겨선 곤란하다. 하루 공부량을 매일매일 적게 해 학습진도를 확인하도록 하고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진척도를 물어 하루치 해야 할 공부를 상시키는 것도 어머니의 몫이다.

"어른들도 혼자 공부하는 게 어려운데 아이는 오죽하겠어요. 엄마가 항상 아이 주변에 있어줘야 합니다. 가끔 눈을 맞추고 엄마가 든든한 후원자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해요."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이씨가 한 달 동안 준호에게 쓰는 평균 교육비는 얼마나 될까. 그녀는 "영어학원비 27만원, 중국어와 일본어 인터넷 강의료 21만원, 국어·수학·일본어 학습지 9만원(각 과목당 3만원) 등 모두 합쳐 57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학교에 다니는 가정에 비해 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만만한 비용은 아니었다.

홈스쿨링은 준호의 경우처럼 주입식 교육 대신 가정에서 따뜻한 돌봄 속에서 하고 싶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경쟁과 입시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서 창의적인 학습도 가능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만 하다가 '해야만 하는' 공부를 등한시 할 수 있다. 또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배우는 사람과의 '관계' 를 배우지 못해 사회성이 낮아질 수도 있다. 준호 역시 "친구가 없다는 점, 모르는 것을 지적해 줄 스승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라고 했다.

준호는 올해 고입 검정고시를 칠 계획이다. 과학고나 외고 진학도 생각하고 있고, 여의치 않으면 대안학교 진학도 고려 중이다. 장래 꿈은 기계공학 박사가 되는 것이다. 이씨는 "향후 대안학교를 가든, 특목고를 가든 아이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좀 더 많은 선택권을 아이가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양한 학습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 이숙현씨의 홈스쿨링 원칙

1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라.

2 엄마 혼자 공부계획을 세우지 마라. 아이와 대화하며 결정하도록 도와라.

3 공부방에 아이 흥미를 자극할 물건을 두지 않는다.

4 하루 동안 해야 할 일(공부)을 스스로 적게 하라.

5 점심·휴식시간에 진척상황을 확인하라.

6 상벌을 확실하게 주라.

7 수면을 충분히, 쉬는 시간에는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눠라.

8 엄마의 부재는 선생님이 없는 교실과 같다.

9 모르는 문제는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라.

10 체력을 기르고 자주 자연과 접하도록 하라.

Comments

헵시바 2012.03.02 10:06
좋은 기사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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