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하는 홈스쿨링의 유혹

홈스쿨기사



손짓하는 홈스쿨링의 유혹

네아이아빠 0 1,916 2013.07.14 00:18
10년도 더 전쯤 호주 북부 한 소도시에 살 때 주변에 고만고만한 아이 넷을 둔 가정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의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엄마 손을 붙잡고 저희들끼리 뭉쳐 다니는 것이었다. 집에선 뭘 하는지 몰라도 다섯 식구가 공원에서 뒹굴거나 수퍼마켓에서 함께 장을 보는 모습,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었다. 나중에야 말로만 듣던 가정 내 교육, 가정 학교(home schooling)를 하는 집이라는 걸 알고 놀라움과 더불어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낯설고 미심쩍던 홈스쿨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차치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 겨운 그 엄마의 희생과 자기 신뢰, 강인한 절제력, 무한한 인내력, 사려 깊은 결단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아이가 어서 커서 유치원에라도 들어갔으면, 그래서 좀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해방의 그날’에 대한 염원을 ‘앙망’하기 마련이거늘 스스로 그 기간을 무한 유예키로 한 결심이 존경스럽기조차 했다. 당시 중학생 아이들을 둔 나만 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또래 엄마들과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고 산책이나 독서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꿀처럼 맛나게 보내곤 했다.

 요즘 부모들 가운데 아이들을 학교에 들여보낼 때 기특하고 뿌듯한 마음과는 별도로 ‘아, 이제 내 아이가 어엿하고 건전한 시민적 소양을 쌓을 훌륭한 교육을 받게 되는구나’ 하며 감격에 겨워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솔직히 이제 아이를 잠시라도 몸에서 떼놓을 수 있게 된 홀가분함과 해방감의 기쁨이 더 크리라. 더구나 요즘처럼 위태로운 제도권 교육 속에 아이를 밀어 넣으면서,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할망정, 학교 교육보다 홈스쿨링이 백 배나 더 좋다고 해도 엄두를 못 내는 것이 부모, 특히 엄마들의 심정일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학교에서 붙들어 둔 시간으로도 모자라 학원으로 어디로 내돌리다 밤늦은 시간에야 집에 돌아오게 하는 현실임에야 말해 무엇 할까.

 10 대 초반만 돼도 일찌감치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 버린 후 가뿐하게 부부만 지내는 경우를 호주에 살다 보니 자주 접하는데, 마치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한창 힘든 사춘기 아이를 맡은 하숙집 아줌마더러 부모 노릇을 하라는 격이라 조금 얄밉게 느껴지곤 한다. 유학을 빌미로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생업 구조가 바뀐 근대 사회에서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기관이 생겨난 배경에는 아이들을 집단으로 맡아주는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는 오직 그 기능만 남은 느낌이다. 맡기는 맡되 지식뿐 아니라 인성·문화·예술적 소양 등 지·덕·체를 겸비한 학교 교육의 본래 모습은 쏙 빼고 효율적이며 결과가 눈에 보이는 ‘지식 주입’만으로 그 시간을 때우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최근 호주에는 홈스쿨링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왕따와 입시 경쟁, 폭력이 일상화된 학교가 더 이상 내 아이를 안전하고 건전하게 보호할 수 없기에 내 자식 내가 키우겠다고 결단하는 대견하고 미더운 젊은 부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홈스쿨링 부모들은 하나같이 학과 공부는 물론이고 폭넓은 독서와 여행, 견학, 탐방, 집안 살림 등 자녀들과 함께 말 그대로 전인적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해 가는 과정이 그렇게 미쁠 수가 없단다. 홈스쿨링을 실천하고 지켜본 어떤 이는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일생 마음에 새겨야 할 교육의 본질을 짚은 말이다.

 한국도 홈스쿨링 가정이 미미하나마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요원한 일일 것이다. 자기만의 달콤한 시간을 포기하고 짧게는 1∼2년, 길게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자녀와 삶의 궤를 오롯이 같이하겠다는 각오가 어디 쉬운가. 홈스쿨링을 통해 부모 자신의 삶도 함께 성장하고 깊은 충일감으로 채워진다지만 결단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신아연 재 호주 칼럼니스트

 ※필자는 92년 호주로 이민해 호주 동아일보, 호주 한국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국내에도 인터넷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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