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려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은 부모들께

자녀양육정보


조금 느려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은 부모들께

네아이아빠 1 1,377 2011.06.21 22:07
제가 한창 대중강연을 열심히 할 때였습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민석이 엄마는 ‘초등학생의 공부는 결국 습관이 핵심’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고 아이의 습관 형성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일단 공부의 양부터 줄였죠.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30분 정도만 함께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방과 후에 숙제를 먼저 하고, 두어 과목 문제집 몇 장 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거기에 조금 더해 자기 전에 책 읽기를 빠뜨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 정도면 다른 아이에 비해 공부 분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그러나 민석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공부가 힘들고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민석이 엄마는 자신의 의도를 몰라주는 아이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려봐야 아이가 정신을 차릴 것 같다는 말까지 했으니까요.

서로 경쟁하듯 공부를 많이 시키려할 때, 민석이 엄마는 오히려 공부의 양을 줄였습니다. 이는 아이를 시험과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통스럽게 공부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공부습관을 들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엄마의 사랑이 있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별로 행복하지 않아 하니, 엄마의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엄마 말마따나 아이를 정말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리면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까요? 학원 순례를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행복할까요? 아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 왜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까요?

이들이 공부를 어려워하는 것은 공부할 양이 많아서가 절대 아닙니다.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양을 줄이는 것은 꼭 필요한 조치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아이는 금방 그 양에 적응하면서 차차 그것조차 많다고 느끼게 될 테니까요. 공부 분량이 줄었다고 해서 공부 자체가 좋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혹 저학년 때 충분히 놀게 한 후 고학년 때부터 공부를 제대로 시키겠다는 부모를 봅니다. 충분히 놀고 나면 ‘이제는 공부 좀 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이런 극단적 구분은 오히려 노는 것과 공부는 전혀 별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노는 것은 즐겁고 공부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는 거죠.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운동장이 놀이터이듯이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도서관도 놀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노는 것이 신체적 유희라면 공부는 정신적 유희니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두 가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엄마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 때 공부가 즐거웠냐고 간혹 강연 때 물어보는데, 그렇다는 부모가 거의 없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 부모의 머릿속에 이미 공부는 힘들고 괴로운 것, 그러나 참고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거죠. 공부라는 고통을 견뎌내면 성공이라는 보상이 온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거죠. 안타깝게도 이러한 생각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이됩니다. 저는 이것을 공부경험의 대물림이라고 부릅니다. 공부를 어려워했던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려 합니다. 어려워도 꼭 견뎌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나본 많은 아이들 중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어른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공부를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노는 것 만큼은 재미 없어도 대개는 견딜 만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작 어려움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라는 거죠. 아이가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과정은 대개 부모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가 저절로 공부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 테니까요.

늘 말씀 드리는 것이지만, 아이에게 공부를 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면 자녀교육은 실패합니다.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학습 지도의 제1 원칙이며,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초등생과 중고등학생이 조금 다릅니다.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당장의 배는 부르겠지만 반복될수록 몸이 병듭니다. 공부도 이와 같아서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는 마치 슬로푸드와 같아서 배가 고픈데 밥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고통이 따릅니다.강제적으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방법은 참 쉽습니다. 이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학부모가 되려는 것이지만 그래서 대개 실패합니다.

민석이 엄마는 ‘빠른 교육’의 폐단을 알고 있습니다. 대신 아이가 자연스레 공부습관을 들이면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느린 교육’을 택했습니다. 느린 교육을 택하면 꼭 함께 따라오는 것이 ‘인내’입니다. 느린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는 아이의 태도가 답답해 속이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아쉽게도 그건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느린 교육 1단계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입니다.

교육에 대한 원칙이 확고하지 못한 부모가 '느리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많은 고생이 뒤따를 거란 건 예상해야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게 될 겁니다. 당장 배가 고픈데, 옆에 라면은 있는데, 장을 봐야 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 때나 강연 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교육은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결국 부모 자신을 바꾸는 것이라고. 자녀교육은 결국 부모의 자기수양이라고 말입니다.
 
 
ㅣ손병목ㅣ 부모2.0 대표 | 행복한 학부모 포털 부모2.0 www.bumo2.com
 

Comments

오키 2016.01.26 17:58
저도 여태 놀려야 할 저학년 아이에게 공부를 너무시킨다고 생각하며 늘 불만스럽게 생각했는데, 놀이든 공부든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거군요. 저의 생각이 변해야 아이도 변할 수 있음을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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