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여행캠프 관련 논란글에 대한 홈스쿨지원센터의 입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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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여행캠프 관련 논란글에 대한 홈스쿨지원센터의 입장문

박진하 3 1,376 2020.02.28 18:08
최근 아임홈스쿨러 캠프/행사 게시판에 올려진 홈스쿨여행캠프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기에 홈스쿨지원센터의 공식 입장문을 공지하였습니다. 입장문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오가고 있기에 해당 공지문을 아임홈스쿨러 새소식 게시판에 올려진 것으로 일원화하며 하단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Comments

이종호 2020.02.29 12:08
저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는 데
진보 좌파 뿌리가 공산주의 이고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이고
이것을 마치 성경적인 사상으로 위장하려는 움직임으로  목회자와 많은 지식인들을 미혹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홈스쿨 가족들에게도 맞닥뜨려야 하는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대처를 하는 소장님을 지지합니다

기독교인은 진보좌파가 될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진보 좌파 사상에 관심을 가지신분들이 계시다면
역사적으로 공산주의가 어떻게 태동되었고 하나님을 대적을 하고 있는 지를 확인을 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임종원 2020.02.29 15:59
다른 분들은 세세히 모르겠지만,
대천덕 신부님에 관해서는 그분의 전체적인 삶과 신앙과 사상을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공정하게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오니 아래 영상을 끝까지 봐주시고,
아래 글도 열린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저는 아임홈스쿨러와 박진하 소장의 권고와 결정에 따라
앞으로 이 사이트에 더 이상 아무런 글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위 입장문에서처럼, 이제 분별은 각자의 몫이며 궁극적인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대천덕 신부님에 대한 증언 영상(안애단 신부)
https://www.youtube.com/watch?v=MZrRw2SY43w

대천덕 신부 매도에 대한 반박(박창수 목사)

대천덕 신부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가짜 뉴스가 유포되고 있다. 심지어 위키 백과에서도 대천덕 신부를 공산주의자라고 적어 놓았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의 대표적 유포자 가운데 정동수 목사가 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을 이미 10만 명 넘게 시청했다. 이 동영상에서 정동수 목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첫째, 대천덕 신부는 공산주의자이다. 둘째, 대천덕 신부의 영향으로 성공회대학교가 좌파의 온상이 되었다. 셋째, 대천덕 신부의 성령론은 비성경적이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주장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면, “첫째, 대천덕 신부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둘째, 성공회대학교가 소위 좌파의 온상이 된 것은 대천덕 신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 셋째, 대천덕 신부의 성령론은 성경적이다.”이다.

역순으로 반박해 보자. 대천덕 신부의 성령론은 비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경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잘 정리된 신약 학자의 논문이 있는데 지면 관계상 따로 그 논문의 주요 내용을 올리기로 하고 여기에는 그 첫머리를 아래 기재한다.

“성령론에 관해서 대천덕의 가장 큰 공헌은 성령 사역을 신자와 관계하여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으로 나눈 것과 성령의 가장 핵심적인 사역을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로 본 것이다. 그의 성령세례론은 그의 조부의 성령세례론과 많이 다르지 않다. 그의 성령으로 인한 중생론과 성령의 열매론도 다른 신학자들의 견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대천덕의 성령론의 백미는 성령의 사역을 한 종류로 보지 않고 두 종류로 본 것이다. 성령은 한 분이지만, 성령은 사람과 관계하여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사역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성령이 사람의 마음 밖에서, 즉 사람의 몸 위에 행하는 사역이다. 전치사가 발달해 있는 헬라어나 영어에서 보면 이것은 성령이 사람 ‘위에’(ἐπί, upon) 행하는 사역이다. 이것은 사람이 “위로부터 능력으로 [옷]입혀”지는 것이고(눅 24:49), 성령이 사람 몸 밖에서 역사하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고(행 1:5), 성령이 신자 몸 위에 “임하시는 것이고”(행 1:8, 19:6), 성령이 사람 위에 내려오는 것이고(행 8:16), 성령이 부어지는 것이다(행 10:45). 이러한 일은 사실 구약성서 시대에도 있었다. 신약 시대에 달라진 점은 이러한 은사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행 2:17-18).

성령 사역의 또 다른 한 종류는 신약성서 시대에 비로소 시작된 성령의 내적인 역사인데, 성령이 신자 ‘안에서’(ἐν, in) 역사하는 사역이다. 이 사역에 대한 약속은 예레미야 31:31-34과 에스겔 36:26-27에 근거하고 있다.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바는 신약 시대에는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 역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에 따라 신자는 거듭나고(요 3:5), 그 마음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넘쳐흐르는 것 같은 기쁨이 넘치고(요 7:37-39), 그리스도의 영이 그 사람 속에 거하고(롬 8:9; 약 4:5), 하나님과 신자가 상호 내주하며(요일 1:10, 2:4, 3:24), 하나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는다(갈 5:22-23).

대천덕 신부는 성령의 내적인 역사는 신자의 구원과 성화와 관계된 것으로, 외적인 역사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과 관계된 것으로 본다. 두 역사가 모두 성령의 역사인데, 두 사역이 모두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이 중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편협하게 이해하는 것이고, 또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합쳐서 이해하면 신약성서에서 성령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김동수, “대천덕 성령론의 특징과 공헌”, 영산신학저널 (36), 2016).

다음으로 성공회대학교가 소위 좌파의 온상이 된 것은 대천덕 신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 대천덕 신부가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인 성미가엘신학원의 원장직을 사임하고 강원도 태백의 산골짜기로 가서 예수원을 개척한 시점과 성공회대학교가 정동수 목사의 주장처럼 소위 좌파의 온상이 된 시점 사이에는 몇 십 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성미가엘신학원의 원장으로 내정되어 한국에 오기 전에 대천덕 신부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하고, 빈곤 문제에 대해 궁극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한 헨리 조지의 이론을 받아들인 후였다.

지난 2009년, 다큐멘터리 <땅>을 제작하기 위해, 희년사회 형제들과 함께 예수원을 방문하여 현재인 여사(Jane Grey Torrey, 당시 89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때 현재인 여사는 남편인 대천덕 신부가 헨리 조지를 처음 알게 된 경위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셜리 치졈(Shirley Chisholm)이라는 흑인 여성 국회의원에게서 현재인 여사를 통해 대천덕 신부가 헨리 조지를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헨리 조지→셜리 치졈→현재인→대천덕→한국 희년 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래는 현재인 여사가 당시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다.

“저희가 한국에 오기 전에 그 당시의 국회의원, 미국의 국회의원이었던 셜리 치졈(Shirley Chisholm)이라는 분을 통해서 헨리 조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앨라배마 주의 페어호프라는 곳에서 여성 신자들을 위한 수련회에 주강사로 오셨어요. 남편이 앨라배마 주의 페어호프가 헨리 조지의 원리를 따라서 땅에 대한 정책을 수행해서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헨리 조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그가 쓴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그 책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빈곤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가 바로 한국에 오기 직전이었는데 그 책을 구한 다음에 읽으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대천덕 신부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빈곤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하고 헨리 조지의 이론을 수용한 시점이 한국에 오기 전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산주의와 완전히 결별한 대천덕 신부가 성미가엘신학원의 학생들에게 공산주의를 유포해서 지금 성공회대학교가 좌파의 온상이 되었다는 말인가? 정동수 목사의 주장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다. 착각과 상상은 자유이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동영상에 담아 한국 교회에서 존경받는 고인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짓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매우 무례한 언행인 것이다.

대천덕 신부는 청년 시절에 한때 “실천적 이론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였는데, 그 이유는 중국에서 자라면서 보아 온 비참한 빈곤의 원인과 그 궁극적 해결책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제시하지 않았고 공산주의자들이 (비록 그것이 잘못된 대안이었을망정)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동수 목사는 자신처럼 소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면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지난 1980~90년대에 그 빈곤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던 정직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던 역사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대천덕 신부는 배 안의 노동조합에서 함께 일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종종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려 했으며”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을 하려고 했”고, 마르크스주의의 기저에 있는 휴머니즘이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이상주의적 인본주의자였던”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환멸을 느끼고 인권 투쟁에서 멀어짐으로써, 결국 이러한 노력을 잔인하게 이용해 자기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손에 인간의 권리를 넘겨주는 것을 보”면서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천덕 신부는 헨리 조지가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비평했는지 보았고, 드디어 성경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일관된 체계를 발견”하고, 헨리 조지의 이론이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잘 증명된 체계임을 알게” 된 후에,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 아래는 대천덕 신부의 자서전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글을 정독하고 앞으로는 더 이상 대천덕 신부를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는 짓은 하지 말라.

“중국에서 자란 나는 사회 문제, 특히 그 당시 지배적이던 가난에 무심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상대적으로 잘산다는 점에 죄책감을 느꼈고 가난의 원인과 가능한 해결책을 알아내려고 계속 노력했다.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주기만 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나는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에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거기에 마음이 끌렸다. 미국에서 노먼 토마스가 사회주의 측 공천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나는 깊은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서는 중국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에는 모택동과 적군(赤軍),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보다는 공산주의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후에 선원이 되었을 때는 공산주의를 지지해 마르크스와 레닌과 스탈린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선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은 생계를 위해서 일할 뿐 사회 문제나 윤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또 한쪽은 노조, 계급투쟁, 사회 정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희생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과 함께 일했지만,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종종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려 했으며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항상 걱정이 되었다. 나는 이 문제의 가장 단순한 해결책은 내가 직접 이 그룹을 맡아서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한편, 나의 기독교 신앙과 대치되지 않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생각을 실천에 옮겼지만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는 없었다.”(대천덕, 30-31).

“배에는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었고, 사회 정의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믿지 않는 유대인이나 신앙을 잃은 가톨릭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인본주의를 공통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인본주의가 기독교 신학에 감춰진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노력했다. 우리의 모든 말과 의식이 단지 인본주의적 내용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인지, 인간의 복지를 이루는 일에 헌신적인 자칭 ‘무신론자’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주’로 부르면서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인본주의 이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며 예수님도 단지 역사적인 인물에 그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나는 교제를 갈망했으며, 성령님의 코이노니아가 단지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아주는 모임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코이노니아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초자연적인 끈인 것이다.

예수님이 만약 죽음에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주님도 아니고 진실한 분도 아니다. 따라서 그가 보낸 성령도 진짜가 아니며 인간의 본성이 변할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단순한 인간으로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끈은 오직 이기심뿐이다. ‘너’의 이기적인 관심과 ‘나’의 이기적인 관심이 우연히 일치할 때 ‘우리’는 같이 일할 수 있고 일종의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결코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항상 가지고 있다. ‘나’를 이용하거나 배신하는 것이 ‘너’에게 이득이 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고, 그 때 ‘나’는 ‘너’가 그렇게 나를 이용하거나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의심하면서 살아야 하고, ‘너’는 ‘나’를 의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 창조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인간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신뢰할 만한 존재로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철학으로서 인본주의는 효용성이 없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라는 바위에 좌초한다. 그것이 바로 신학자들이 ‘원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상주의적 인본주의자였던 내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환멸을 느끼고 인권 투쟁에서 멀어짐으로써, 결국 이러한 노력을 잔인하게 이용해 자기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손에 인간의 권리를 넘겨주는 것을 보았다.”(대천덕, 136-138).

“나는 내가 가진 사회적 신념을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그룹을 교회 안에서 찾지 못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때가 이르자 영국 성공회의 F. 헤이스팅스 스마이스(F. Hastings Smyth) 신부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신학자이자 경제 분석가였다. 스미스 신부는 나처럼 실천적 이론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공산주의와 협력했지만, 가톨릭 전통에 서 있는 신학자로서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가톨릭의 전통에서는 영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물리적 매개체인 세례식이나 성만찬 같은 성례를 강조한다. 여기에는 변증법적 유물론도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영적인 가치로서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스미스 신부는 <하나님 안에 들어온 인성>(Manhood into God)이라는 제목의 신학 책을 썼는데, 여기서 그는 성육신(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의 교리를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놓았다. 후에 그는 <주님의 몸을 분변하는 일>(Discerning the Lord's Body)이라는 책도 썼는데, 여기서는 정치·경제를 포함한 실제 생활과 성체 성사(영성체)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스미스 신부의 가톨릭복지협회(Society of the Catholic Commonwealth)에서 몇 년간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그 모임은 독신 공동체였기 때문에 비중 있는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다. 스미스 신부가 죽었을 때 그 공동체의 마지막 회원이 그 모임을 해체했고, 우리는 더 이상 모임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실천적 사회 운동 프로그램을 가진 기독교 단체를 찾는 고아가 되었다. 그 때 아내가 성공회 부인들을 위한 수양회에서 헨리 조지(Henry George)를 소개받고 집에 와서 내게 그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그가 쓴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을 읽으면서 그가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비평했는지 보았고, 드디어 성경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일관된 체계를 발견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일컬은 조지의 표현은 새로운 것이었다. 나는 그가 성경을 매일 읽는 성공회 집안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헨리 조지의 문체는 영어 성경과 아주 비슷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지주의’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잘 증명된 체계임을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그 체계의 정확성을 확신했다는 것은 이에 대한 가장 큰 평가가 될 수 있다.”(대천덕, 31-33).

“최근에 한 미국인 사학자와 헨리 조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헨리 조지가 살아있을 때는 수백만 명이 그를 따랐지만 그가 죽고 나자 이제는 그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그 사학자 친구는 이것을 ‘신비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 원인이 부분적으로는 전세계를 마르크스주의에 주목시킨 1917년의 러시아 혁명에서 사회주의가 ‘성공’한 데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보다 좀 더 깊이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치계와 대학들은 이미 지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지주들은 그 문제에 대해 정부와 대학이 침묵을 지키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문제는 메이슨 가프니(Mason Gaffney)의 <경제학의 타락>(The Corruption of Economics)에서 상세히 다루어지고 있다.”(대천덕, 145-146).

참고문헌
대천덕, 『대천덕 자서전』, 양혜원 옮김 (서울: 홍성사, 1999).
유희진 2020.02.29 17:05
권위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신 임선생님이 아니신지요
운영자님께서 글 쓰시지 말라고 했는데 복사해서 3군데나 올리시고..보통분은 아니십니다.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십니다.
대천덕신부님의 사상을 바탕으로 세미나를 하셔야 하는데 논쟁으로 걸림돌이 되니 항변하시는듯 보이십니다.
그리고 죄없는 사람을 돌로 치라 하심은 임선생님 본인이 하나님앞에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심과 같습니다.
너는 죄안지었어? 라고 말하심과 같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선하게 말씀하시고 다 포용하시는듯 하면서 뒤에선 카톡으로 자료 보내시면서 읽어보고 먼저 임선생님께 보내라고 하셨죠
사람을 그렇게 조종하시려 하심은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복음적인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시기 위에 오래 참고 보시겠지요
그 속에서 보고있는 홈스쿨러들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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