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여행을 다녀온 쉐마홈스쿨 인터뷰 #2

박진하 2011-04-15 (금) 17:27 7년전 10352  
http://www.imh.kr/b/B43-167
2편을 올리는데 매우 늦었네요. 본래는 보름에 한편 꼴로 올리려 했는데 홈스쿨 컨퍼런스가 겹쳐있다 보니 도저히 시간이 안나서.. 아마도 3편 역시 다음 달에나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내용을 녹음한 것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도 일이고 또 그대로 받아적은 말도 글로 볼 때는 어순, 문법 그야말로 말이 안 되기에 읽었을 때 이해되기 쉽도록 말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도 일인지라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보니 그러네요.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아울러 본 인터뷰 기사가 지면의 제한을 받지 않기에 가급적 독자들도 실제로 만나 들은 것처럼 대화내용들을 지나친 축약없이 상세히 담았습니다.
 
of8.jpg

 
있었던 갈등을 하나 말씀해주신다면요?
옥봉수: 여행다니면서 보니까 처음에는 다 협조를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서 양보를 잘하고 그랬는데 극한 상황의 많은 경험을 하게 되니까 예를 들어 야간버스를 24시간 타고 내려 배도 고프고 지쳐있는데 빨리 숙소 잡아야하는 그런 상황에서 “짐 하나 더 들어라.”, “못 들겠다.”, “가위바위보 하자.” 이러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거에요. 그때부터는 여행이라는 부분보다는 자기 것을 먼저 챙기더라고요. 텐트를 쳐야될 때도 뺀질 거리는 애가 있고 자기 맡은 책임을 다하는 애가 있고 아이들 기질이 다 다르더라구요. 그런 가운데서 갈등이 불거지면서 여행 떠나기 전에 속에 있던 그런 부분들이 드러나더라고요.

박임순: 식구이기 때문에 수도 없이 싸웠어요.

옥봉수: 미국하고 유럽에서는 렌트카를 이용하다보니 짐을 매고 다닐 기회가 없었어요. 배낭여행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 줄고 편한 여행으로 바뀐 거에요. 그런데 프랑스에서 다시 배낭을 메고 터키 이스탄불로 와서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어떤 분이 연결해줘서 선교사님하고 저희들이 같이 있으면서 편하게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배낭여행의 야성이 죽어져 버리고 여행을 편하게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다들 자리잡은 거에요.

박임순: 지치기도 지쳤지요.

옥봉수: 처음에는 쌩쌩하니까 감당할 수 있었는데 편한 생활을 맛보고 나니까 짐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거에요. “네가 하나 더 들어라.” 하면서 짐 문제로 형제간의 다툼이 일어난 거에요. 그게 발단이 되서 제가 중재를 하고 이야기를 거들다가 “부모님은 짐을 얼마나 들고 다니느냐?” 그런 부분에 대한 문제가 나온거에요.

박임순: 여행이란게 똑같은 시간에 피곤하고 똑같은 시간에 배고픈 거에요. 저같은 경우는 짐을 많이 못 들잖아요. 막내가 우리보고 이렇게 많이 들으라 하면서 엄마는 그럼 얼마나 들고 다녔냐 항의를 하니까 아빠가 아주 화가 난 거에요. 그렇게 하면서 갈등이 커졌지요. 여행중에 그런 갈등들이 수없이 많은데 그때는 여행 막바지에 체력적으로 우리 두사람이 바닥이 났어요. 남편이 “이런 여행은 의미가 없다. 너희가 부모를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따로 가겠다.” 그랬지요.

옥봉수: 그러면서 저희들은 그리스로 안가고 터키 이스탄불 공항 가서 한국으로 가기 위해 택시 잡으러 가고 아이들은 말리고 그랬지요. 신용카드를 하나 주면서 “이것 가지고 너희들은 그리스 가고 싶으면 가라. 우린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그랬어요. 우리는 남은 기간 여행하지 않고 돌아오려 했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말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결국은 아이들이 무릎꿇고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그래서 나머지 여행을 하게 되었지요. 그게 가장 큰 갈등이었던 거 같아요.

박임순: 배낭을 매일 매고 다닐 때는 괜찮았는데 3개월 반을 차에 싣고 다니다가 다시 매려니 너무 힘들었던 거에요.
 

of2_1.jpg
      
싱가폴의 히포 투어버스
 
 
그 사건 이후에 아이들 변화가?
 
m2.jpg
박임순: 많은 분들이 특정 사건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많이들 질문 하거든요. 경험들이 서서히 쌓이는 거에요. 수없는 갈등이 일어났다가 해결되고 일어났다가 해결되는 가운데 성격이 깎이고 타협과 배려하는 훈련이 엄청 많이 이뤄졌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24시간을 같이 붙어 있잖아요. 한국에선 싸우면 자기 방에 들어가면 되는데 갈 데가 없잖아요. 나혼자 옳다고 주장하면 안된다는 것을 모두가 느낀 거에요. 부모인 저희도 훈련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생각으로 옳다고 한 것이 다 옳은게 아니었구나. 아이들하고 24시간 있으면서 아이들 의견을 들어보니 우리가 했던 많은 부분들에 오류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들도 부모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알게 되었어요. 부모는 무조건 필요할 때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도 연약한 존재구나. 우리보다 더 지치고 힘들어하고.. 그런 것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부모를 섬기기 시작하더라고요. 형제간에도 처음에는 서로 배고프고 힘들고 하니까 조금이라도 안하려고 하더라구요. 여행은 예측되는게 없으니까 어떤 때는 정말 스트레스 받는 일이 벌어져요. 그러면 그 핑계를 다른 사람에게 자꾸 전가시키고 하면서 갈등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변화되는게 ‘이 부분의 책임은 우리 모두다’ 라는 인식이 가족 공동체를 이루더라고요. 막내의 경우는 막내로써 자기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하는 부분이 깎이면서 형이나 누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고 누나나 형도 형제 전체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생기고요. 가족이라 함부로 할때도 있고 그랬는데 오히려 가족이라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1년 6개월동안 끊임없이 일어나고 해결되고 하는 과정에 인격이 성숙되는 과정을 겪었는데 여행을 다녀와서 그 진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여행중에는 때때로 ‘우리가 이런꼴을 보려고 여행을 나왔나?’ 하는 마음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갔다와서 저희 두사람을 보니 많이 변했고 아이들은 정말 많이 변했거든요. ‘아!, 우리의 인격변화가 한순간에 되는게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여행의 좋은 점이 뭐냐 하면 회피할 수 없고 직면해서 해결해야 되거든요. 직면해서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 더 힘들었을 지도 몰라요. 회피하면 그 순간은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힘들었던만큼 지금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더 많이 생긴 것 같고 성과가 더 좋은거 같아요. 아이들이나 부모나 가정에서 수없이 많은 문제가 생기잖아요. 부모들은 어떤 행동을 고쳐야지 해서 많이 말하잖아요. 그렇게 하는게 해결책이 아니고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의논하고 다듬고 그 작업이 필요한거지 자녀가 한순간에 확 바뀌는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옥봉수: 앞에서 저희가 여행을 가게 되었던 동기를 이야기할 때 좀 길었지요. 사실 여행기간보다도 갈등의 시기가 훨씬 더 길었었지요. 4,5년이라는 그 기간동안 서로가 상처받았던 부분들이 단순히 집에서 오래 있는다고 해결되는 것들이 아니더라고요. 그때 받았던 그런 상처들이 여행하면서 다 나타난 거에요. 여행이란 것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치유되면서 갔다오고 나서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여행하기 전에 우리 가족이 가지고 있던 갈등과 마음의 상처를 이해 못하면 저희들이 여행을 가면서 있었던 이런 갈등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로 실감을 못 하는 거에요. 아이가 가출도 하고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고 하는데 아이가 집에 들어오기 싫었던 이유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 아픔이 있었기에 들어오기 싫었던 것인데 우린 그것을 몰랐던 겁니다. 여행하는 가운데 그런 문제들이 나타나는데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거죠. 부모에게 반항을 하면서 혹은 부모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서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자기가 받은 상처를 내놓는 거에요. 그런 수없는 과정들이 이전에 받았던 상처들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서 서로 다듬어지고 깎이어지고 비록 아픔을 느끼지만 서로가 갈아주며 둥글둥글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부분이 여행안에 스며들은 것이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박임순: 결국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간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어떤 분이 여행중에 어떤게 가장 기억에 남는가 물어보는데 대답이 “가족들과 싸운거요. 그게 가장 감사한거에요.” 이렇게 이야기해요.

옥봉수: 그전에 여행가기 전에는 제가 퇴근해서 들어오면 아이들이 아빠 눈치를 딱 봐요. 아빠 기분이 어떻는가? 그리고 방에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거의 안 했었지요.
 

여행중 에피소드?
옥봉수: 저희가 여행갔을 때 20~25kg 큰 배낭 하나, 10kg짜리 작은 배낭 하나. 엄마는 제일 조그만한거 하나 들고 갔었어요. 여행을 처음 가니 옷을 많이 갖고 갔어요. 책도 읽어야지 하고 갖고 갔는데 너무 힘든 거에요. 큰 딸이 하는 말이 “배낭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군요.” 그런 말을 하더군요. “그것 참 명언이다.” ^^

박임순: 그래서 싱가폴에서 짐을 많이 버렸어요. 여행의 첫 출발인데 어떤 마음이 드냐 하면 한국에서 그 많은 물건을 왜 갖고 살았나 싶더라고요. ‘이것만 가지고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데..나그네 삶이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옥봉수: 우리가 매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아가면서 한 개만 있으면 되는데 우리는 2개, 3개, 4개.. 우리가 결단 내릴때 교사직 그만두면 뭘 먹고 살거냐 묻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걸 내려놓으면 끝인거 같은데 내려놓고 났을때 더 많은걸 보고 듣고 느꼈지요. 그리고 자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게 놀라웠어요.

박임순: 필리핀 있을때 환율이 올라가는거에요. 1,130원에 나갔는데 1,350원까지 올라갔어요.

옥봉수: 첫때 둘째가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기간이 오래 걸려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거든요. 여행전에 이야기했었던 부분도 있어서 그럼 가족끼리 다 같이 하자 했는데 환율이 1350,1400원 올라가니까 아이들이 “이번 생일선물은 포기할게요.” 하더라고요. 청소년 나이에 자기 것을 포기하는 것을 못하거든요. 부모가 돈이 있던지 말던지 내 생일이니까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겠다는게 요즘 청소년들의 사고방식이거든요. ‘여행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들이 커가는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지요.

박진하: 보통 에피소드하면 재미있었던 일이나 황당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보람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시네요. ^^

박임순: 재미있었던 일은 아프리카가 많아요. 케냐에 갔을 때 아프리카는 비자비를 1인당 50달러를 받아요. 5명이니까 250달러잖아요. 게다가 그때 환율이 1450원이었어요. 너무 비싸잖아요. 일주일만 하는거는 20달러 거든요. 그런데 공항직원은 그것은 48시간이라고 못 준다는거에요. 법적으로 경유비자가 일주일에 20달러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저희들 사고로는 그렇게 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그래도 좋으니 20달러 일주일 것 주세요.” 했어요. 1시간동안 싸웠는데 정말로 여권에다가 48시간만 적어준 거에요. 그래서 저희가 케냐에서 48시간만에 쫓겨났거든요. 그때 제가 생각한게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한국적인 사고로 공항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정해진 규칙을 안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상상을 못했어요. 그때 여행사에서 만난 분이 “여기에선 한국적 사고로 통하지 않는게 더 많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케냐에서 볼 것도 다 못 보고 쫓겨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옥봉수: 국경에 버스가 없어요. 보츠와나에서 나미비야로 떠나는데 국경에 가면 대중교통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국경에 도착했는데 넘어가려는 대중교통이 없는거에요. 그래서 히치 하이킹을 했어요. 한국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가족 5명이 히치하이킹을 해서 목적지로 이동했어요.

임순: 나중에 들어보니 아프리카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은 “내 것 다 가져가세요.” 하는거래요. 그만큼 위험한 일이래요. 저희가 만난 분이 나미비야의 교사였어요. 너무 좋은 분을 만났는데 이것은 진짜 신앙간증이에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이었거든요. 걱정이 되니까 본인 전화번호 주고 우리 가는 버스표까지 다 해결해주고 갔거든요.

옥봉수: 그 분이 국경사이에 군부대에 업무가 있어서 왔는데 마침 기름 넣으로 온거에요. 우리가 이야기를 하니 지프차였는데 앞 자리에 억지로 2명이 앉고 뒷 트렁크에 탈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탈 수 있다.” 하고 뒷 트렁크에 3명이 타고 짐 다 싣고 국경을 통과한 거에요.

박임순: 아프리카는 가족이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래요. 여행사 사장님이 아프리카에 가족이 겁 없이 배낭여행을 온다는게 대책이 안선다 하더라구요. 저희들이 아무도 연락을 안하고 여행 떠나 올 때에 한편으로는 모험이었는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봄이었어요. 기적같은 일들이 수없이 많았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믿음교육이 되었어요. 저희들의 방식과 하나님의 계획은 다르시더라고요.
아프리카는 워낙 에피소드가 많아요. 여행자료 다 들어있는 노트북 분실했다가 찾은 일, 카메라 분실했다 찾은 일, 교통사고 난 일...

 
of2_3.JPG


옥봉수: 뉴욕에 가서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딸하고 저희 네명이 헤어졌어요.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거에요. 핸드폰도 없고 연락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요. 뉴욕지하에 내려가니 우리나라처럼 갈래길이 엄청 많더라구요. 왔던길 돌아가고 하면서 1시간동안 헤맸어요. 서로 한참 찾다가 정말 포기하고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갔는데 없는 거에요. 목적지가 스테튼 아일랜드 크루즈 선착장이었거든요. 우리는 지하철에서 기다리고 있고 한명이 그 목적지에 나갔다 와 보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4명이 다 나갔다가 들어오면 지하철티켓을 또 끊어야 되니 한명만 나간거죠. 한명은 밖에 있고 3명은 안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 장소로 갈 수도 없고 여기에 있을 수도 없고 고민하고 있는데 옆의 길로 해서 우리 딸이 나오더라고요. 그 넓은 뉴욕에서 말이에요.

박임순: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 것 같고 아르헨티나에 축구보러 가서 카메라 안 뺏기려고 바지 다 찢어져서 왔어요. 그게 더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옥봉수: 아들 둘이 아르헨티나 왔으니 축구열기를 한번 느껴보고 싶다해서 여행중에 만난 한국 형하고 축구보러 갔어요. 정말로 축구가 종교처럼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하는데 마치고 나오는데 덩치 큰 한명하고 2명이 앞을 가로막더니만 카메라를 뺏으려고 카메라를 집은 거에요. 그런데 주변사람 아무도 안 도와주더래요. 카메라가 반바지 주머니에 있는데 카메라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못 준다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더라는 거에요. 실랑이에 바지가 쭉 찢어졌어요. 바지가 찢어지면서까지 3명이 완강하게 반항을 하니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난처하니 도망을 가버린거에요.

박임순: 한국적인 상황으로는 이해가 안가는데요. 아프리카나 남미는 그런 일이 많아요.


옥봉수: 아프리카가 더 안전해요. 남미는 총을 쓸 수가 있어요. 우리가 당한 이런 일은 굉장히 약한 거에요. 우리는 5명이서 다녔으니까 안전했지요.

옥은택: 그 순간은 겁났는데요. 택시타고 가면서 바지 찢어진 거 보니까 웃기던데요.

박임순: 진짜 사람들이 안 도와줬지?

옥은택: 사람들이 안 도와줘요. 그 사람이 만약에 총들고 있으면 자기까지 위험해지니까 그냥 놀래고 다 지나가버려요.

박진하: 거기 갈만한 나라가 아니네요.

박임순: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데도 못 가요. 그보다 더한 일이 훨씬 많은데 ^^ 한국대학생이 아르헨티나에 여행왔는데 잠시 나갔다오더니 여권하고 가방 모두 빼앗겨가지고 여권은 새로 만들고 돈은 부모님한테 연락해서 저희 계좌에 넣어서 다시 빼서 그 학생에게 주고 그랬어요. 한국적인 사고로 나갔을 때 다른 나라의 상황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아요. 거기에서 사고의 틀을 깨는 작업들이 이루어지죠.
옥봉수: 뉴욕에 가서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딸하고 저희 네명이 헤어졌어요.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거에요. 핸드폰도 없고 연락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요. 뉴욕지하에 내려가니 우리나라처럼 갈래길이 엄청 많더라구요. 왔던길 돌아가고 하면서 1시간동안 헤맸어요. 서로 한참 찾다가 정말 포기하고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갔는데 없는 거에요. 목적지가 스테튼 아일랜드 크루즈 선착장이었거든요. 우리는 지하철에서 기다리고 있고 한명이 그 목적지에 나갔다 와 보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4명이 다 나갔다가 들어오면 지하철티켓을 또 끊어야 되니 한명만 나간거죠. 한명은 밖에 있고 3명은 안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 장소로 갈 수도 없고 여기에 있을 수도 없고 고민하고 있는데 옆의 길로 해서 우리 딸이 나오더라고요. 그 넓은 뉴욕에서 말이에요.

박임순: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 것 같고 아르헨티나에 축구보러 가서 카메라 안 뺏기려고 바지 다 찢어져서 왔어요. 그게 더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옥봉수: 아들 둘이 아르헨티나 왔으니 축구열기를 한번 느껴보고 싶다해서 여행중에 만난 한국 형하고 축구보러 갔어요. 정말로 축구가 종교처럼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하는데 마치고 나오는데 덩치 큰 한명하고 2명이 앞을 가로막더니만 카메라를 뺏으려고 카메라를 집은 거에요. 그런데 주변사람 아무도 안 도와주더래요. 카메라가 반바지 주머니에 있는데 카메라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못 준다하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더라는 거에요. 실랑이에 바지가 쭉 찢어졌어요. 바지가 찢어지면서까지 3명이 완강하게 반항을 하니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난처하니 도망을 가버린거에요.

박임순: 한국적인 상황으로는 이해가 안가는데요. 아프리카나 남미는 그런 일이 많아요.


옥봉수: 아프리카가 더 안전해요. 남미는 총을 쓸 수가 있어요. 우리가 당한 이런 일은 굉장히 약한 거에요. 우리는 5명이서 다녔으니까 안전했지요.

옥은택: 그 순간은 겁났는데요. 택시타고 가면서 바지 찢어진 거 보니까 웃기던데요.

박임순: 진짜 사람들이 안 도와줬지?

옥은택: 사람들이 안 도와줘요. 그 사람이 만약에 총들고 있으면 자기까지 위험해지니까 그냥 놀래고 다 지나가버려요.

박진하: 거기 갈만한 나라가 아니네요.

박임순: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데도 못 가요. 그보다 더한 일이 훨씬 많은데 ^^ 한국대학생이 아르헨티나에 여행왔는데 잠시 나갔다오더니 여권하고 가방 모두 빼앗겨가지고 여권은 새로 만들고 돈은 부모님한테 연락해서 저희 계좌에 넣어서 다시 빼서 그 학생에게 주고 그랬어요. 한국적인 사고로 나갔을 때 다른 나라의 상황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아요. 거기에서 사고의 틀을 깨는 작업들이 이루어지죠.
 

여행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옥봉수: 저희들에게 힘들었던 것은 야간버스 타는 거였어요. 72시간씩 버스를 타고 간 적도 있어요. 인도에 갔을 때 야간버스를 2번 탔어요. 도저히 힘들어서 못 타겠더라고요. 아이들은 야간버스 타면 숙박비도 벌고 먹을 것도 준다며 타자고 하는데 우리는 몇 번 타고 나니까 도저히 못 타겠더라고요.

박임순: 내리지 않고 계속 달리는데 버스 안에 화장실도 있고 식사를 계속 줘요. 기사는 한명은 자고 한명은 운전하고 교대로 운전해요. 그 다음에 힘들었던게 남미에서 벼룩에 물려서요. 남미의 집 구조가 벽이 높아서 햇볕이 안 들어와요. 스페인 침공 때문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구조에요. 담높이가 3미터이고 집에 got볕이 안들어오고 문도 이중구조에요. 게다가 이불에 벼룩이 있는거에요. 온몸이 가려운데 우리나라 60년대 뿌리던 그런 약을 가구나 옷, 이불에 뿌려야 죽는다는 거에요. 지금도 애들 몸에 상처가 있어요. 거기서 주는 약이 있는데 약이 독하더라고요. 그래서 침낭 안에 들어가 잤어요. 그래도 물리고 그랬죠.

박진하: 전쟁이 없는 지금도 그런가요?

박임순: 지금도 치안이 불안하니까 여전히 담이 높고 철망이나 유리같은 걸 꽂아놨어요.

박진하: 정이 안가는 곳이네요.

박임순: 아니에요. 진짜 좋은데 ^^

옥봉수: 남미가 정말 좋아요. 왜냐하면 그런 위험적 요소는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대체로 여행자들에게 호의적이고 안전해요. 우리나라 60,70년대의 정감들을 느낄 수 있고 산야들, 풍경,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만물의 세계가 너무 멋져요.
 
 
of2_2.jpg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착시현상놀이
 

여행중 가장 즐거웠던 일?

박임순: 아이들이 아프리카에서 번지점프를 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번지점프하고 비교가 안되요. 111m인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아요. 그 밑에는 낭떠라지에 강물이 흐르고 있어요. 우리는 보는 것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하는데 아이들은 그걸 즐기더라구요. 우리 딸까지도. 그 밑에 안전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계곡이거든요. 그 다음에 이집트에 가서 아이들이 스킨스쿠버 해서 자격증을 땄어요. 도전하는 그 느낌 있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무한테도 아는 사람 없이 갔는데 하나님이 예비해놓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처음에는 두려웠는데 여행이 가면 갈수록 그게 기대가 됬어요. 예상되지 않은 분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을 너무 많이 느꼈지요.


 
of2_7.JPG

111m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마치고 올라오는 모습


 



 
 
 
f4.jpg
옥봉수: 저는 자연경치를 봤을때 즐거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페루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즈코에 갔어요. 3600m 위에 있는 곳인데 첫째날 묵은 숙소에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안델센 산맥이 안개에 깔렸다가 보이는 것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 신비하다! 그때 느꼈던 깨달음이 컸던 것 같아요. 페루에 가면 여행자들이 마추픽추를 한번씩 보려고 하는데 유적지를 한번 보면 처음에는 “와!” 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사진하고 똑같네. TV하고 똑같네.’ 그런 느낌을 받아요. 이 고생해서 왔는데 사진에 있는 모습, TV에 나온 똑같은 모습을 본다는게 아쉬워 ‘하나님께서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는 다른 마추픽추를 보게 해주세요.’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기도가 되더라고요. 찾아갔는데 그날 아침에 비가 왔다가 그치면서 안개에 다 가려 있는 거에요. 그때 하나님께서 바람을 부니까 안개가 지나가면서 잉카 사람이 살던 집들하고 마을이 보이는 거에요. 보이다 사라졌다 보이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추픽추가 열리는 거 있지요? 그걸 보고 얼마나 기쁜지 너무나 감동적인 거에요.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셔 감사하고 날마다 창조하시는 그 마추픽추를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도 자연을 통해 감성이 회복되었어요. 현대사회는 너무 메마르고 무뎌져 가잖아요. 어느 날은 우리 아이들이 아침에 설산을 보면서 “아빠, 일어나 보세요. 너무나 아름다워요!” 하고 깨우더라고요.
 
 
 
of2_4.JPG

of2_5.JPG

of2_6.JPG
기도응답을 받았던 마추픽추의 모습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 http://khomeschool.com 글,인터뷰: 박진하 사무장

lee0510 2011-09-28 (수) 10:52 6년전
ebs방송을보았습니다. 돈으로도 주고 사지못하는 가족애와 자녀들이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저희 가정도 그렇게되기를 기대합니다^^
주소 추천 0
에스더정 2018-01-15 (월) 15:52 3개월전
아  ebs 방송에서도 뵐 수 있군요..저는 이 사이트에서 처음 보고 너무 신기해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도 이렇게 아이들과 지내보면 좋겠다고 하는데 같이 한번 방송을 보면 좋겠네요 ^^
주소 추천 0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추천 조회
30 인터뷰/ 임하영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저자) 1 1 2395
29 캐네디언 홈스쿨러 캐서린 인터뷰 #2 5 0 6200
28 캐네디언 홈스쿨러 캐서린 인터뷰 #1 6 3 6571
27 노옴 웨이크필드 목사 인터뷰 1 2 7620
26 강아지똥 방문기 및 호빵 하종중 선생님 인터뷰 10 7 10316
25 학교와의 관계정리에 관한 인터뷰 20 16 11334
24 세계일주여행을 다녀온 쉐마홈스쿨 인터뷰 #3 6 7 11606
세계일주여행을 다녀온 쉐마홈스쿨 인터뷰 #2 2 20 10353
22 세계일주여행을 다녀온 쉐마홈스쿨 인터뷰 #1 15 32 8610
21 홈스쿨출판사 DCTY 권성윤 대표 인터뷰 4 33 6160
20 홈스쿨전문서점 DCTY 테헤란 서점 방문기 12 38 8556
19 강원도 평창 로뎀나무 쉼터 방문기 & 타잔 홈스쿨 인터뷰 4 48 8482
18 경기도 일산 소리홈스쿨 인터뷰 5 70 8843
17 충북 보은 예수마을 공동체 보나콤 방문기 #2 4 46 7035
16 충북 보은 예수마을 공동체 보나콤 방문기 #1 2 63 8888
15 파주 왕립가정공동체 방문 인터뷰 2 95 6675
14 캐나다 TLA 방문 인터뷰 3 73 5856
13 미국 Farris 가정 인터뷰 4 86 5342
12 캐나다 밴쿠버 홈스쿨교회와 앤섬 아카데미 방문 인터뷰 2 93 5823
11 마크 빌라이즈 박사 인터뷰 1 104 4758
10 홈스쿨선교사 브래드 볼러 인터뷰 1 103 6172
9 캐나다 밴쿠버 홈스쿨 가정 인터뷰 3 123 7684
8 성남시 분당 코람데오 홈스쿨 인터뷰 2 136 7114
7 Revival 홈스쿨 인터뷰 7 137 6455
6 양수리 오경홈스쿨 방문 인터뷰 6 131 7954
5 윌링 가족 인터뷰 2 141 7393
4 로고스빌리지 홈스쿨 방문 인터뷰 2 116 8934
3 JOY홈스쿨 박래득.최은영 선교사 가정 인터뷰 137 7730
2 의왕시 이레 홈스쿨 방문 인터뷰 5 130 7828
1 보나스쿨 방문 인터뷰 3 158 8369
목록



 
1. 미담맘- 11,853점
2. 시언맘- 9,762점
3. vneun- 8,517점
4. 엄마선생님- 7,681점
5. 두공주맘78- 4,944점
6. 하루까80- 4,071점
7. kjhlyh- 3,667점
8. 푹신이- 3,237점
9. 배움터- 2,549점
10. 예쁜쏘야- 2,012점
11. 친절한사남매- 1,996점
12. 찬희맘- 1,955점
13. 기용맘- 1,908점
14. 따사롬- 1,776점
15. 예성지호맘- 1,661점
16. 지니용이- 1,539점
17. livingwater- 1,477점
18. 돈비맘- 1,431점
19. 제자엄마- 1,387점
20. 라일락숲- 1,348점

 
homeschoolcenter.co.kr dcty.co.kr
개인정보보호책임자: 박진하 | Tel: 050-5504-5404 | 주소: 경기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639-3 정주빌딩 B1 | E-mail: 4idad@naver.com
Copyright 2011 ⓒ www.imh.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