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을 찾는 법, 학교 밖 스승들에게 배웠죠"

홈스쿨기사



"스스로 길을 찾는 법, 학교 밖 스승들에게 배웠죠"

네아이아빠 0 2,640 2017.04.12 11:46
에세이집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쓴 임하영군이 지난 4일 인터뷰를 마친 뒤 서울 정동 덕수궁길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임군은 “학교 밖 학습을 통해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길렀다”고 말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학교 밖에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났습니다.”

임하영군(18)은 단 하루도 ‘학교’라는 곳을 다니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때 임군은 집에 있거나 도서관을 찾았다. 집에선 ‘놀이와 공부’로 가족과 함께했고, 도서관에선 ‘독서 근육’을 키웠다.

그때 만난 놈 촘스키, 홍세화, 박노자 등은 책 속의 스승이었다. 뛰놀고 싶으면 산이나 들에서 종일 놀았다. 소나기가 잔뜩 내린 다음 날엔 달팽이를 잡으러 갔다. 검은색과 황백색이 어우러진 뒷산의 남생이무당벌레는 볼 때마다 신비로웠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나서는 곤충학자를 꿈꿨다.

홈스쿨링(Home-schooling)으로 자란 임군은 최근 에세이집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천년의상상)을 펴냈다. 지난 4일 경향신문과 만난 임군은 정말로 학교를 한번도 다닌 적이 없냐는 질문에 “유치원을 다닌 이후로 학교 비슷한 곳에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어느 날엔가, 제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줄곧 투정을 부렸대요. 두 살 아래 제 여동생도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내내 칭얼댔고요. 부모님은 고민 끝에 동생은 어린이집을 그만 다니게 하고, 저한텐 한 학기 동안 유치원을 다니며 계속 다닐지 말지를 생각해보고 얘기해달라고 했어요. 저는 집에서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임군의 부모가 ‘결단’을 내린 배경은 이렇다. 평소 공동체 생활을 꿈꿨던 두 사람은 오래전 유럽으로 공동체 탐방을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부모들은 오후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임군의 아버지는 당시를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느낌’으로 기억했다. 그러다 때마침 국내에서 홈스쿨을 시작한 가정들과 자주 만나면서 홈스쿨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배웠다.

부모의 결정에 아쉬움은 없을까. “홈스쿨링 자체가 부모와 자녀 간에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이고,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나가다 보니 저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임군처럼 학교가 아닌 집에서 교육을 받는 방식을 홈스쿨링이라고 하지만, 임군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홈스쿨과 같지만, 교사나 부모가 아닌 당사자 스스로 무엇을 배우고 어디를 갈 것인지 등 학습 방식이 보다 주체적인 점에서 기존 홈스쿨과 차이가 있다. 이를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고 한다.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방식이에요. 스케줄표에 따르지 않고, 관심가는 대로 공부하고 경험하는 거죠. 자연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스승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부모님이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격려와 조언을 해주셨지요.”

국어·영어·수학 등 학교 정규 과목뿐 아니라 ‘성품’ 교육도 따로 받았다. 남들이 말할 때 경청하는 법이나 감사를 표하는 법 등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바이올린 실력도 취미 수준 이상이다. “홈스쿨 모임에서 어머니들이 품앗이를 했어요. 누구 어머니는 바이올린을, 누구 어머니는 수학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요.” 영어는 프리랜서 번역가인 아버지한테, 불어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가 주도하는 ‘르몽드 신문 읽기 모임’ 등을 통해 익혔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면서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임군은 “열다섯살 즈음 한 대형서점의 글쓰기 공모전에 처음 응모한 글이 당선돼서 그다음부터 열심히 썼다”고 말했다. 임군은 그렇게 모은 상금으로 미국과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임군은 홍세화씨의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책 중간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 싸우려면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첫 번째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또 한 가지는 그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인식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일단 능력을 갖추면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 초심을 잃은 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게 되죠. 그때 결심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고, 그 능력의 ‘보잘것없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요.”

3년 전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임군의 목표는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배우는 것이다. 매주 르몽드 신문 읽기 모임에 가고, 프랑스어학원을 다니는 이유다. “부모님은 ‘진학보다 진로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해왔어요. 뭘 하고 싶은지 진로를 먼저 정하라는 뜻이죠. 저는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생각입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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