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링 가족 인터뷰




윌링 가족 인터뷰

박진하 2 9,975 2011.04.15 10:11
지난 3년간 한국에서의 사역을 아름답게 잘 마무리하고 올해 2월 떠난 윌링 가족과의 인터뷰입니다. 실은 제가 직접 찾아가거나 저희 집에 초대하여 인터뷰를 하려 했는데 통역등 여러가지 문제로 차일 피일 미루다가 나중에는 일정을 잡지 못하여 결국 이메일을 통하여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네요. 많은 양의 글을 기꺼이 번역으로 섬겨주신 황병규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참, 영묵이에게도(일부는 아버지를 도와 영묵이가 번역해주었다 하네요.) 또 인터뷰 질문을 번역해준 김승예 형제에게도 감사합니다.
한국에 오셔서 특별한 후원처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가신 윌링가족들의 헌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인터뷰글을 보면 이 가족들의 한국사랑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윌링 가족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2년간 섬기고 떠났던 섬롤 가족 역시 다시 한국에 방문하였을때 기쁨의 눈물로 우리의 축복에 화답하며 당시 엘리자베스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나는 미국에 돌아가서 한국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고 그래서 밤마다 울었답니다."
한국인이 정이 많고 친절하다고 윌링 가족 모두 그렇게 표현했으나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이들이 더욱 정이 많고 친절하다고 느껴집니다. 
홈스쿨 선교사들이 본을 보인 것처럼 한국의 홈스쿨러들도 먼저 선 가정들이 다른 가정들을 세워줌으로 헌신하며 한알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3년간 한국에 계시면서 하늘소리 오케스트라를 만들며 한국의 홈스쿨러들을 위한 음악사역을 하셨는데 한국에 오시게 되었던 계기를 설명해주신다면? 
우리가 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음악으로 주님을 섬기고자 함이었습니다. 첫째는 홈스쿨러 오케스트라 두 개를 시작하는 것을 돕고, 둘째는 홈스쿨 코업을 갓 시작한 가족들을 격려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봉사활동을 하러 한국에 오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음악 단체와 함께 중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으로 친구가 한국에 들려 봉사활동을 좀 하라고 아주 적극적으로 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우리가 꼭 이 나라에 가야 한다고 제게 또렷이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2005 7월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여 2주 동안 머물렀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한국 사람들이 우리가 한국에 다시 와주길 정말 원한다고 느꼈습니다. 미국에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음악을 배우고 훈련할 기회를 아주 많이 주셨습니다. 마땅히 받은 것을 나눠야 하는데 생각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2005년에 방한했을 때 새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을 비롯해 미국인 친구들이 우리에게 한국에 가서 새 일을 시작할 것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무척 많이 기도한 끝에 한국에서 1년을 지내기로 결정했습니다.
 
 
2. 본래 3년이란 시간을 계획하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더 짧은 시간을 계획하였는데 늘어난 것이었나요?
한국에 와서 일을 해보니까 한국 생활이 무척 즐거웠고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분들을 아주 많이 만나면서 여기 사람들이 우리를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오케스트라 구축을 도우면서 삶의 목적을 강하게 느꼈고 잘되면 한국에 더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습니다. 한 해를 다 보내기도 전에 벌써 한 해를 더 있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두 해를 다 보냈는데 이제는 하나로 통합된 오케스트라가 장래에 계속 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와 힘과 지도력 면에서 오케스트라의 기반을 탄탄히 하기 위해 우리가 9개월을 더 있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가을 학기에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주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책임질 지도자가 한국 홈스쿨 가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무척 즐겁고 행복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이 다 완성되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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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에 계시면서 수잔 윌링이 암진단을 받고 수술및 항암치료를 하는 어려움도 있었는데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사역을 하신 이유가 있다면?  수잔 윌링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한국 생활에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건강이 문제였습니다. 한국에 온지 1년이 채 안되어서 아내 수잔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이 얼마나 심한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정밀 검사를 2주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생활하는 것이 한없이 좋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뜻일까? 이렇게 빨리 말인가? 아내 수잔이 초기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내게 말했습니다. “제가 암에 걸린 것이면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있고 싶어요.” 끝내지도 못할 일을 시작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지구 절반을 넘어오게 하셨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이국 땅에서도 자기를 잘 돌봐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검사 결과를 미국의 유명한 의사 몇 분에게 보냈더니 한국 병원에서 아내의 상태를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많이 기도하고 생각한 끝에 한국에 계속 머물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수잔은 물론 우리 가족과 봉사활동을 위해 좋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자 하나님이 달려와 매사에 우리를 격려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합병증 때문에 세 차례나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우리에게 큰 평화와 도움을 주셨습니다. 수잔에게 암이 없다는 최종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 딸 그레이스도 건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온지 9개월이 되었을 때 그레이스가 또 팔꿈치를 다쳤습니다. 이 부상 때문에 나우병원에서 2년간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곳 의사들과 물리치료사들은 그레이스를 혼신을 다해 도왔습니다. 딸은 이런 부상 중에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치면서 찬송가를 즉흥적으로 반주하는 실력을 키워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왼손으로 오케스트라 중급반을 지휘했습니다. 이제는 짧은 시간이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4. 한국에서의 3년간 있으면서 각 가족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나요? 
평생 간직할 재미있는 추억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이 있었습니다. 지면에 다 쓰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 가족이 돌아가며 몇 가지 추억을 나누겠습니다.
 
존 윌링: 한국사람들이 저와 가족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것을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인은 마음씨가 따뜻하고 정이 많기 때문에 사랑을 계속 느꼈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보면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헌신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매우 열성적입니다. 주중에서 여러 번 교회에 나오고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코업에서는 강한 가정을 세우고 싶은 열망을 보았습니다. 컨퍼런스에서 우리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고 들은 대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무척 많은 시간을 들인 오케스트라에서는 여러 가족들이 음악 교육과 오케스트라 경험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더욱 헌신하였고 상부상조하며 협력했습니다. 저는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지도하면서 아이들의 실력이 처음 이삼 년 사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오케스트라에는 재미있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개성도 가지가지입니다!! 훌륭한 이야깃거리도 많았고 새로운 친구들의 큰 연합체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 덕택에 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상점에서 우리를 도와 준 사람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뭔가 이해가 안되거나 사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종업원들이 세 명이나 다가와 문제를 해결해 준 적도 있습니다. 상점 종업원들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했습니다. 차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틀 만에 고쳤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빨리 처리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배달을 무척 좋아합니다. 무엇이든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에까지 정말 빠르게 배달됩니다. 서울에서 길을 잃은 적도 많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글 표지판을 읽지 못했습니다. 표지판이 아예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GPS가 없었기 때문에 주님이 우릴 거듭해서 구출해 주셔야 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잃었는데 스포츠를 생중계하던 프로듀서가 생중계 현장을 떠나 20분 동안이나 길안내를 해주어서 겨우 제 길을 찾은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놀랐죠! 그런 일을 어디 가서 듣겠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길을 잃고 헤매다가 오토바이 경찰의 호의를 받으며 쾌속주행으로 혼잡한 도로를 뚫고 25분만에 공항에 시간 맞춰 도착했던 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때 경찰은 지나가던 차들을 세우고 우리로 하여금 가서는 안될 길을 통해 빨간 신호등을 빠져나가게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경찰은 우리가 어떤 항공사 비행기를 탈지 몰랐을 텐데도 우리 항공사인 아시아나 항공 앞으로 정확하게 인도해주었습니다.
해마다 뚜렷한 사계절을 맞는 것도 무척 좋았습니다. 텍사스 남부는 두 계절밖에 없습니다. 아주 덥지 않으면 아주 추울 뿐입니다. 텍사스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알레르기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아파트 뒤로 야산과 산길이 있어서 수백 번도 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와우!
 
수잔: 전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할게요. 제가 한국어를 시험삼아 말해 본 경험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루는 거리에서 파는 산양유를 시음하다가 텍사스의 우리 집 뒤뜰에서 키우던 산양이 생각나서 아저씨에게 나는 goat가 있었습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 나는 goat입니다.”라고 말해버렸어요. 그 아저씨는 참 친절한 분이어서 크게 웃지 않으셨어요.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얘기하고 나서야 제가 한 말이 내가 산양입니다!”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한번은 제 물리치료사 노동국씨에게 인사한답시고 머릿속으로는 노동국 선생님을 생각했는데 입으로는 안녕하세요, 노 동생하고 말았어요. 우리가 한국말을 시도할 때마다 유쾌한 일이 벌어졌어요. 한국에서 지낸 몇 년 동안 여러 사람들을 우리 집에 들여 함께 보낸 시간이 멋진 추억으로 가득했어요. 음식을 만들고 게임을 하고 간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죠. 추석에 여러 홈스쿨 가족이 함께 모여 송편을 만들고 함께 놀이를 즐겼던 시간, 신정에 윷놀이를 했던 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거에요. 한국에 사계절이 있어서 참 좋아요. 계절이 바뀜에 따라 열매도 사람들의 일과도 바뀝니다. 한철 과일이 끝나면 다음 철 과일이 나오죠. 철마다 특유의 과일을 먹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여러 면에서 한국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어요.
좀더 진지한 면을 보면 제 믿음이 한국에 있는 동안 부쩍 커졌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필요가 생길 때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어요. 도움이 꼭 필요할 때마다 도와 줄 사람을 보내주셨어요. 공경하고, 자기 것을 희생하여 베풀고, 기도를 많이 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러분의 모범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제게 특별한 추억은 남쪽 나환자 요양소와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입양한 손양원목사의 박물관을 방문한 것이에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행동이 있을까요. 박물관에서 손목사님의 아홉 가지 감사를 읽고 나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아주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손목사님이 자기 두 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임을 당한 것을 어떻게 특권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특히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나환자들을 섬긴 그분의 사랑을 보았어요. 저는 깊이 감명을 받았고 그분을 평생 본보기로 삼을 거에요. 순교자들을 기리는 장소를 여러 곳 방문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한국에 있는 동안 여러 한국인 친구들이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났어요. 많은 한국 그리스도인이 선교활동을 희망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들은 선교를 고귀한 사명으로 여기고 한국에서 사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하나님을 섬길 자세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편안한 곳을 떠나 기꺼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으로 가시는 분들을 보며 배운 것이 많아요. 그분들은 익숙한 것에 집착하지 않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암치료 후에 산행을 통해 제 기운을 회복시켜주셨어요. 저는 산행을 무척 좋아해요. 거의 매일 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앞이 야산이었어요.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 동안 나무, , , 동물을 즐겁게 구경하고 꼭대기에서는 운동하는 것까지 하나님께서는 제 영혼을 즐겁게 해주셨어요. 매일 남편과 아이들과 하나님과 훌륭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산행을 통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제게는 엄청난 축복이었어요.
 
: 저는 한국에 살면서 복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생활이 참 좋았고 지금도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책 한 권을 다 채울 만큼 놀라운 이야기가 많아요. 오케스트라, 교회, 홈스쿨 친구들이 저희 집에 왔을 때 재미있게 보낸 시간이 기억납니다. 사람이 하도 많이 모여서 집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함께 음식을 만들고, 산행을 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꽃을 피웠죠. 한국인 친구들 모두를 사랑하고 아주 많이 보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매일매일이 참 좋았어요. 대중교통과 배달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말을 배운 후에는 생활하기가 아주 편했어요. 오케스트라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일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참 귀엽고 저희에게 소중했어요. 아이들이 저를 언니’, ‘누나라고 부를 때 특히 좋았어요. 지금도 그 소리를 정말 듣고 싶어요. 한국에서 아름다운 곳을 구경하려고 여행을 떠났을 때도 참 좋았어요. 시골 풍경이 아름다웠고 산도 멋있었어요. 미국과는 다른 점이 많은 새 문화를 보고 접한다는 것이 축복이었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한국사람이 다 된 거나 마찬가지죠.) 전 한국문화가 좋고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한국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하죠. 정말 귀한 일이에요. 독특하고, 신나고, 재미있고, 사랑스런 나라에서 살고 난 후로 저는 딴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레이스: 한국 생활은 제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정점이자 섬광이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바다 건너 아시아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이었죠.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제가 만난 여러 나라 사람 가운데 손꼽힐 만큼 정말 정이 많고 친절한 국민이에요. 하나님께서 제 마음과 삶을 바꾸시려고 여러분을 사용한 것이라고 믿어요. 한국에 와서 산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평생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라면 책으로 써도 모자라겠지만 늘 잊지 않고 영원히 보물로 간직할 특별한 추억 몇 가지만 나눌게요.
한국사람들 덕택에 저의 한국 생활은 상상보다 훨씬 좋았어요. 처음 한국에 도착해 공항 비행기에서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마지막으로 미국에 돌아오는 미국행 비행기를 탄 순간까지 한국사람들은 저희 가족에게 기대 이상으로 큰 사랑을 보여주었어요. 한국사람들의 베풂과 진지함 덕에 저는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저는 한국사람들의 콩글리쉬가 좋아요. 외국인이 제 모국어인 영어를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이마트에서 물건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금방 직원 서너 명이 다가와 최선을 다해 도와주신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한국 상점에는 대부분 카트를 끌고 층층을 오르내리며 계속 장을 볼 수 있는이동식경사로(ramp system)”가 있어서 참 좋았어요. 참 편리했어요. 특히 아빠를 찾을 수 없을 때 말이죠. 그저 이동식경사로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아래에 머리가 흰 사람만 찾으면 됐어요. 잃어버린 아빠를 찾는 건 절대로 오래 걸리는 법이 없었어요.
컨퍼런스 참여, 오케스트라 활동, 병원 치료를 계기로 소중한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어서 무척 흐뭇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 팔과 엄마의 건강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저도 힘을 얻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되었고, 더 나아가 저도 특정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의 대중교통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어요. 매우 복잡했지만 버스 번호와 지하철 분당선의 역 순서를 암기하는 일은 즐거운 도전이었어요. 버스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어요. 저는 미국에서 어릴 적에 노란색 통학버스를 늘 타보고 싶었는데 홈스쿨을 했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노란색 통학버스를 탈 필요가 없다는 걸 미리 아셨을 거에요. 왜냐하면 저희 엄마가 아파서 제가 우리 집 차를 이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병원까지 혼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으니까요.
한국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아주 강하게 일하시는 것을 보았어요. 오케스트라에서 가르치는 일이 무척 좋았어요. 어린아이들의 사랑스런 얼굴과 넘치는 에너지는 제게 큰 기쁨이 되었답니다. 아이들을 보고 싶고 지금도 곁에서 가르치고 싶어요. 비록 제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교사였지만 저를 참 잘 받아주었어요.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 열성을 갖고 저를 신뢰해 준 덕에 더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가능한 한 빨리 말이죠. 부모들이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보니 기뻤어요. 오케스트라는 특별히 귀하다고 믿어요. 하나님께서 오케스트라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활짝 펼쳐주시리라 기대해요.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일한 결과로, 저희 가족은 더욱 친밀해고 단합되었답니다.
이제는 한국에 단지 친구가 아닌 가족이 많이 생겼어요. 한국사람들이 위아래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이제는 참 편안하게 느껴져요. 언니, 오빠, 이모, 선생님, 목사님, 집사님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칭호랍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식사를 할 때마다 매운 맛 때문에 진짜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어요. 매운 음식을 그렇게 먹는 제 모습으로 한국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기뻤어요. 이제는 미국에 있는데도 꿈에 김치와 한국 음식이 나와요. 아파트의 따뜻한 방바닥이 그리워요. 아주 조용히 지내야 하는 것 말고는 큰 건물에 수백 세대가 동시에 함께 자고 먹고 웃고 말하며 사는 아파트 생활도 괜찮다 싶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난 친구들도 그립네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것이 미국문화와 반대라고 느꼈는데, 이제는 오히려 미국문화가 저와 반대라고 느껴요. 한국사람이 다 되었나 봐요. 정말 한국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보신탕도 먹었으니까요. 저희 가족이 미국음식을 만드는 방식까지 확실히 달라져서 저희 이모나 사촌은 저희 음식이 너무 맵다고 해요. 정말 재미있죠.
한국은 언제나 제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에요. 한국생활은 특별하고 재미있는 추억이기에 잊을 수가 없어요. 목록을 만들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늘 한국과 한국사람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조나단: 한국아이들이 제게 달려와 제 이름을 조나단(원래 조나단의‘-[-than]’은 혀가 윗니를 치면서 소리를 내는 발음인데 아이들은 그냥 한국말 [dan)’으로 발음한다.)’ 이라고 부르며 제 주머니를 두드려 보아요. 뭔가 재미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말이죠. 한국사람들이 아주 친절해서 좋았고 제 머릿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거에요. 주님을 위한 여러분의 열성을 잊지 못할 것에요. 오케스트라에서 훌륭한 학생이 되어주어서 고마워요. 야산, 큰 산, 나무 등 한국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무척 좋았어요. 저는 설악산을 무척 좋아해요. 정말 아름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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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국에서의 앞으로의 삶의 계획은?
미국에서 저희의 장래 계획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텍사스 주의 산안토니오에서 살 계획입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땅에 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훈련하고 학업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지역교회에서 어떻게 섬기길 바라시는지 계속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섬겨야 할 곳이 동네 특정 지역일 수도, 미국의 다른 지역일 수도, 해외일수도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 몇 년 전에 시작된 홈스쿨 오케스트라가 지도자와 일꾼이 없어서 중단된 채로 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를 다시 살려보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미국에 이주한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가르치며 함께 협력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저와 아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양가 부모님(세 분)을 도울 수 있도록 계속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 80대이시고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결국 산안토니오, 로스앤젤레스, 쏠트레이크시티 사이를 자주 왔다갔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 직업으로 인도하시면 25년 경력이 있는 방송이나 제작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룻의 대학에서는 온라인 수업대신 교실 수업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7월과 내년에 간호대학을 지원하려는데 산안토니오에 있는 텍사스 건강과학센터 대학의 간호대학에 다녔으면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한국에 다시는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은 절대로 마십시오. 특히 저희의 모든 경험과 제 딸들이 한국어를 배운 것을 볼 때 주님께 무슨 계획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사람들과 함께 협력할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7. 한국 홈스쿨러들에게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한국의 모든 홈스쿨러들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배운 지침대로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십시오.’ 왜 홈스쿨을 하는지 그 미래상(vision)을 분명히 하십시오. 공립학교와 그 영향력이 좋지 않다는 것은 다 알지만 그것에서 벗어나는 만이 여러분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수학을 비롯해 과학, 문학, 역사, 음악, 미술, 체육,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강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홈스쿨을 통해 우리는 삶, 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적이고 강력한 기독교세계관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복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에서 그 의미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세대 부모들은 자녀를 홈스쿨해야 할 이유를 보지 못하고 소망(vision)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실생활이 성경에서 읽고 듣는 말씀과 따로 놀아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일주일 중에 일요일 하루만이 아니라 7일 내내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때가 되어 돈, 장학금, 어려운 학과를 학습하는 일, 대학에 들어가는 일 등 장래 교육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체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체제를 정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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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 http://khomeschool.com 글,인터뷰,사진: 박진하 사무장

Comments

lee0510 2011.09.27 22:03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심에 감사드립니다
성정민 2012.07.03 00:24
윌링 가족이 그립네요 미국에서 저와 아이들을 1주일 돌봐주셨었는데 한국을 너무 사랑하셔서 정말 깜짝놀랐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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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세계일주여행을 다녀온 쉐마홈스쿨 인터뷰 #2 댓글+4 박진하 2011.04.15 14086 20
22 세계일주여행을 다녀온 쉐마홈스쿨 인터뷰 #1 댓글+31 박진하 2011.04.15 14647 37
21 홈스쿨출판사 DCTY 권성윤 대표 인터뷰 댓글+4 박진하 2011.04.15 10285 34
20 홈스쿨전문서점 DCTY 테헤란 서점 방문기 댓글+13 박진하 2011.04.15 13043 40
19 강원도 평창 로뎀나무 쉼터 방문기 & 타잔 홈스쿨 인터뷰 댓글+6 박진하 2011.04.15 12762 49
18 경기도 일산 소리홈스쿨 인터뷰 댓글+6 박진하 2011.04.15 13308 71
17 충북 보은 예수마을 공동체 보나콤 방문기 #2 댓글+4 박진하 2011.04.15 10953 47
16 충북 보은 예수마을 공동체 보나콤 방문기 #1 댓글+2 박진하 2011.04.15 15371 65
15 파주 왕립가정공동체 방문 인터뷰 댓글+3 박진하 2011.04.15 11184 96
14 캐나다 TLA 방문 인터뷰 댓글+3 박진하 2011.04.15 8227 73
13 미국 Farris 가정 인터뷰 댓글+4 박진하 2011.04.15 7924 86
12 캐나다 밴쿠버 홈스쿨교회와 앤섬 아카데미 방문 인터뷰 댓글+3 박진하 2011.04.15 8623 93
11 마크 빌라이즈 박사 인터뷰 댓글+2 KCHA 2011.04.15 7439 105
10 홈스쿨선교사 브래드 볼러 인터뷰 댓글+3 박진하 2011.04.15 8860 104
9 캐나다 밴쿠버 홈스쿨 가정 인터뷰 댓글+4 박진하 2011.04.15 11675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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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Revival 홈스쿨 인터뷰 댓글+7 박진하 2011.04.15 9158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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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중 윌링 가족 인터뷰 댓글+2 박진하 2011.04.15 9976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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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왕시 이레 홈스쿨 방문 인터뷰 댓글+8 박진하 2011.04.15 11092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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