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아이, 평가에 주눅든 아이

자녀양육정보


눈치 보는 아이, 평가에 주눅든 아이

네아이아빠 0 965 2011.03.09 13:10
너, 시험 공부 했어?

중간고사 날 아침, 어떤 녀석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공부 많이 했냐고 물어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대로 공부한 녀석이 하나도 없다. 다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공부를 제대로 못했단다. 이런 걸 물어보는 녀석도 웃기지만 시험인데도 제대로 공부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학창시절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시험 날인데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 이것은 ‘셀프 핸디캐핑 전략’의 일종이다. 셀프 핸디캐핑이란 스스로 장애 요인을 만든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랑하기에도 모자랄 판인데 왜 자신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걸까? 왜 아이들은 자신이 공부를 제대로 못했음을 강조하는 걸까?
시험을 망쳤을 때를 미리 대비하고자 함이다.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래 이 정도로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제대로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많다. 남의 눈에 멍청한 아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이번 시험 결과는 결코 나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에, 더 똑똑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셀프 핸티캐핑 전략은 평가목표 성향의 아이에게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혹시 기억하는가?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적이 있다. 평가목표 성향의 아이는 ‘똑똑해 보이고 싶은’ 아이이고 학습목표 성향의 아이는 ‘배우려는’ 아이라는 걸. 똑똑해 보이려는 아이와 배우려는 아이는 공부를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낳는다.


물을 쏟으면, 닦아라

물을 쏟으면 얼른 걸레를 가져와서 닦으면 된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실수로 물을 쏟으면 먼저 엄마 얼굴부터 본다. 눈치를 살핀다. 그건 엄마의 평가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일상적인 평가에 익숙해져 있다.
실수를 잘 용납하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 이런 부모는 속이 좁다. 이렇게 길들여진 아이는 다른 사람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 실수는 곧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실수한 것은 실수일 뿐이다. 잘못이 아니다.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문제를 풀다가 틀리면 노력해서 다음에 맞히면 된다. 문제를 틀린 건 잘못이 아니다. 배우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틀린 것은 잘못이고, 그래서 문제를 틀리고 나면 일단 엄마 눈치부터 본다. 물을 쏟아도 눈치를 보고 문제를 잘못 풀어도 눈치를 본다. 우리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이 이것은 아닐 것이다.
평가에 주눅이 든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아보자.

몇 번을 가르쳐줬는데 또 틀렸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모르면 정말 속 터진다. 이제는 알아들을만도 한데 또 틀리면 화가 난다. 누군가가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면 잘 살펴보라. 가르치는 사람이 엄마인지 아닌지는 옆에서 그냥 10분 정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주기적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큰 소리가 오가면 십중팔구 엄마다. 그만큼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화를 낼 일이 많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틀리면 아이가 앉아 있는 자세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야, 똑바로 앉아!”

대부분 이런 말부터 튀어 나온다. 그런 다음에 하는 말들도 대개 비슷하다.
“지난번에 가르쳐줬잖아, 기억 안 나? 몇 번을 가르쳐줬는데 왜 몰라? 다시 풀어 봐! 집중해!”
이런 식으로 말한다. 더 심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똑바로 앉아서 집중해 다시 풀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잘 풀 수 있을까? 지금까지 줄곧 틀렸던 문제라면 오늘도 역시 틀릴 확률이 높다. 왜 그럴까? 왜 아이는 몇 번을 가르쳐줘도 모르는 걸까? 자세한 나중에 한다. 우선 오늘은 이런 방식으로 지도했을 때 아이의 반응부터 보자.
역시 난 안 돼 - 학습된 무기력
엄마가 이런 식으로 화를 내면서 야단치면서 지도하면 아이는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말한다.

원래 무기력하지 않았던 아이인데, 실패 상황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무기력을 점차 배우게 된 것이다. 배운 무기력이라 해서 ‘학습된 무기력’이라 말한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지도하면서 아이를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무기력은 또 다른 무기력을 낳으며 확산된다. 학교 시험에서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별표만 쳐놓고 풀지 않는다. 푸나 마나니까. 그런 문제가 많으면 그 단원이 싫어지고, 그 과목도 싫어진다. 더 확산되면 공부 자체에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참 오래 간다. 공부에 대한 이런 경험은 대개 평생 간다. ‘나는 수학이 약해’ ‘나는 언어는 소질이 없나봐’ ‘나는 창의력이 약해’ 이런 생각으로 평생을 산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수학이 약한 사람, 언어 능력이 원래부터 떨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은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지에 이르기 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 경험, 그 능력이 평생 가는 줄 착각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모의고사 성적이 수능 때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3년이라면 무엇이든 역전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첫 모의고사 때 수학이 약한 아이는 2년 후에도 수학이 여전히 약하다. 왜 그럴까? 아이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나는 수학이 약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수학을 잘할 수 없다. ‘나는 수학이 약해’ 이 생각은 지금 이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아이에게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학습된 것이다.
 
ㅣ손병목ㅣ 부모2.0 대표 | 행복한 학부모 포털 부모2.0 www.bumo2.com
 

Comment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75 공부습관이야기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 댓글+34 네아이아빠 2011.12.05 3536 21
74 공부습관이야기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기가 너무 어려운 부모들께 댓글+19 네아이아빠 2011.11.08 2686 13
73 공부습관이야기 아이를 가르치다 보면 자꾸 화가 난다구요? 댓글+23 네아이아빠 2011.12.19 3879 12
72 공부습관이야기 읽은 책 또 읽는 아이, 계속 읽게 하라 댓글+12 네아이아빠 2011.10.24 2290 11
71 공부습관이야기 친구 같은 엄마를 넘어 권위 있는 엄마로 ! 댓글+4 네아이아빠 2011.08.11 2046 10
70 공부습관이야기 사고력을 높이는 칭찬 (생각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를 위한 칭찬) 댓글+4 네아이아빠 2011.07.14 1713 8
69 공부습관이야기 하루 20분, 책이 좋아지는 광고방송 댓글+20 네아이아빠 2011.12.05 2523 7
68 공부습관이야기 자녀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세 가지 큰 기술 댓글+10 네아이아빠 2011.06.21 2149 6
67 공부습관이야기 공부 습관을 잡는 3·3 법칙 댓글+2 네아이아빠 2011.03.05 1219 5
66 공부습관이야기 아이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 댓글+2 네아이아빠 2011.03.05 962 5
65 공부습관이야기 예습 복습 못하는 중학생, 그 이유는? 댓글+7 네아이아빠 2011.10.10 2074 5
64 공부습관이야기 공부 도와주는 엄마, 공부 포기하게 만드는 엄마 댓글+2 네아이아빠 2011.06.21 1848 4
63 공부습관이야기 우리 아이 뒤처지지 않을까 늘 조급한 부모들께 댓글+4 네아이아빠 2011.06.21 1524 4
62 공부습관이야기 공부의 3배수 법칙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3.05 1003 3
61 공부습관이야기 우리 아이에게 꼭 맞는 공부법은 책에 없다. 댓글+3 네아이아빠 2011.08.11 1761 3
60 공부습관이야기 습관 잡는 칭찬, 습관 망치는 칭찬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3.05 1004 3
59 공부습관이야기 자녀교육의 성패는 엄마의 분노조절능력에 달려있다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5.03 908 3
58 공부습관이야기 칭찬을 해도 자신감이 없는 아이에게 댓글+6 네아이아빠 2011.07.09 1620 2
57 공부습관이야기 습관적으로 화를 잘 내는 부모를 위하여 댓글+4 네아이아빠 2011.05.29 1497 2
56 공부습관이야기 기억을 만드는 습관, 기억을 망치는 습관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3.05 947 2
55 공부습관이야기 꾸물거리는 아이, 계획-실천 능력 키우는 포스트잇 계획표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5.10 938 2
54 공부습관이야기 놀이 에너지를 공부 집중력으로 바꾸는 지혜 댓글+11 네아이아빠 2011.09.28 1781 2
53 공부습관이야기 화 내지 않고 아이 가르치기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3.05 944 2
52 공부습관이야기 아이 잡는 엄마표 네아이아빠 2011.03.05 903 2
51 공부습관이야기 독서지도, 이것 하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5.03 846 2
50 공부습관이야기 초등 수학 지도의 세 가지 원칙 댓글+2 네아이아빠 2011.05.22 847 2
열람중 공부습관이야기 눈치 보는 아이, 평가에 주눅든 아이 네아이아빠 2011.03.09 966 2
48 공부습관이야기 엄마표 교육이 실패하는 진짜 이유 댓글+5 네아이아빠 2011.06.21 1507 2
47 공부습관이야기 가르쳐 주는 게 하나도 없는 아빠 댓글+1 네아이아빠 2011.03.09 841 2
46 공부습관이야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아이 네아이아빠 2011.03.09 843 2